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그들의 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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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제가 위기라는 말은 무성한데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소비진작을 위해 세금을 줄여줄 것인가, 아니면 세금을 더 걷어 사회복지망을 넓혀야 하는가를 의논해야 한다. 대학 졸업을 하는 50만 명의 신규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해 기업에 지원금을 줄 것인가, 아니면 기업규제를 풀어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토론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국면을 보라. 한때는 쌀 직불금을 가지고 싸우더니, 이제는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여야가 맞붙었다. 요즘은 온통 노건평 얘기뿐이다. 조마조마 가슴이 타 들어가는 국민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미국의 오바마 당선인은 “대통령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일반 사람들이 매일 겪는 일들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매일 겪고 있는 일상의 맥박 위에 나의 손을 계속 얹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왜 우리 정치는 일반 사람들이 매일 겪는 일들에서, 일상의 맥박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세월이 언제나 순탄할 수는 없다. 문제는 고난이 닥쳤을 때 이를 이겨 나갈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다. 경제위기가 온다 해도 대응 역량만 있다면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적이 코앞에 닥쳤는데 안에서 서로의 손발을 꽁꽁 묶고 있다면 무슨 수로 싸울 수 있겠는가. 여야가 싸우고, 여당은 친이와 친박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목이 쉬도록 말하고, 귀가 아프도록 외쳤다. 그러나 현실은 이것이 안 되니 문제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경제위기보다 정치의 위기가 오히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정치에는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권력 유지와 확대요, 다른 하나는 공공선을 위한 행동이다. 정치인 개인에게는 권력의 획득을 위해 당파나 파당에 속한 자신과, 선출된 대표로서 공동체의 공적 책임을 지고 있는 자신이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우리는 정치인에게 공공선과 공적 책임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이 권력요소로 인해 제약을 받는다. 문제는 그 수준이다. 공공선을 우선하는 정치를 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고, 권력이 앞서는 정치를 한다면 국민이 괴로운 것이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공공선을 내세우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고 나면 그것보다는 권력 자체가 최대의 관심이 된다. 그들의 눈에는 국민의 아픈 현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당이 갈라져 싸우는 것도, 야당이 엉뚱한 문제에 매달리는 이유도 권력의 재획득, 자리 보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가 국민의 일상과 멀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밖에서는 괜찮았던 인물도 정치권에만 들어가면 변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위기상황에서 그런 정치인들에게 도덕성만 요구한다고 해결이 될까. ‘웰컴 투 동막골’ 영화가 생각난다. 6·25가 터진 줄도 모르고 평화롭게 지내는 심심산골 동막골에 국군과 인민군이 함께 들어온다. 그들은 그 평화가 낯설었다.

인민군 장교: “뭐 그러니까니 고함 한 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그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부락 촌장: “뭐를 많이 멕여야지 뭐~.” 지금 서민들은 끼니를 걱정하고, 중산층은 강제퇴직과 자식 교육을 걱정하고, 장년층은 은퇴 후를 걱정하지만 정치인들의 걱정은 그런 게 아니라 권력이며 자리다. 그것이 이 나라 정치의 역사였으며 문화였다. 그런 그들에게 또다시, 공적 책임의식을 가지라고 말해봐야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공적 업무를 책임진 그들이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잘 먹이는 수밖에는 없다. 우리 정치인들의 밥은 권력이다. 그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통령 혼자 권력을 움켜쥐려 하지 말라. 박근혜를 움직이고, 야당의 협조도 얻으려면 그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라. 자리를 나누어 주라. 이 나라의 경제위기를 구하려면 그들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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