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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그만두고 무작정 법정 스님 찾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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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아 스님은 1일 “큰 일을 앞두면 꼭 명상을 한다. 마음이 고요할 때 내 안에서 ‘해답’이 나온다. 그러나 나의 집착, 나의 이익을 추구하면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불교는 해도 해도 너무하죠. 팔리어 경전을 푸대접하는 게 말입니다.”

1일 서울 인사동에서 일아(一雅·62) 스님을 만났다. 그는 옆구리에 책을 한 권 끼고 있었다.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민족사, 752쪽, 2만8000원)이었다. 불교의 방대한 팔리어 경전에서 ‘알맹이’만 추리고 추려 번역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의 번역을 위해 대학 강의도 그만 뒀다. 2년간 사람도 안 만나고, 전화도 안 받았다. 두문불출하며 쓴 책이다”고 말했다. 방대한 작업, 2년 만에 그걸 마친 데는 배경이 있었다.

일아 스님은 처음에 수녀였다. 지금처럼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아니었다. “서울여대에 다닐 때부터 목이 말랐어요. 영화에도 미쳤었고, 음악에도 미쳤었죠. 한때는 모든 팝송을 다 외울 정도였죠.” 그렇게 문학과 여행에도 미쳤었다. “그런데도 목이 말랐죠. 그걸 통해선 ‘완전한 인간’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질 않더군요.”

그는 고민했다. ‘시집을 갈 거냐, 수도자가 될 거냐.’ 결국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비구니 스님은 머리를 빡빡 깎잖아요. 그게 너무 낯설었죠. 그래서 수녀가 되기로 했어요.” 집에선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몸져눕고, 오빠는 “이게 부모님께 대한 보답이냐?”며 그의 뺨을 때렸다. 유명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는 “왜 자연을 거스르며 살려고 하느냐”며 호통을 쳤다. 그 앞에서 그는 “아버지, 저를 붙들어 매시겠습니까?”하고 되물었다.

결국 그는 서울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에 입회했다. 그리고 가톨릭 신학원을 졸업한 뒤 수녀가 됐다. 그렇게 6∼7년가량 수녀로 살았다. 그러나 종신서원을 하진 못했다. “가톨릭은 너무나 매력적인 종교입니다. 엄숙하고, 자아에 대한 절제도 강하죠. 그리고 점잖죠. 2000년간 이어온 가톨릭의 전통에는 분명 힘이 있어요. 다만 저와 적성이 맞질 않았을 뿐이죠.”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아니오’란 답을 얻었다.

그 길로 그는 수녀복을 벗었다. “막막하더군요. 딱히 갈 데도 없었죠.” 그때 ‘법정 스님’이 생각났다. 사실 법정 스님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수도회 수련원에서 도서관 소임을 맡은 적이 있었죠. 그때 법정 스님 책을 많이 읽었어요. 당시 수녀님들 사이에서 법정 스님의 인기가 ‘짱’이었죠.”

그는 무작정 송광사 불일암으로 갔다. 거기서 법정 스님을 만났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물었죠. ‘올바른 수행을 할 수 있는 장소와 그걸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말이죠.” 법정 스님은 장문의 편지와 함께 그에게 조계종 비구니 특별선원인 석남사를 소개했다. 그는 석남사에서 행자 생활부터 다시 시작했다. “수도 생활은 이미 겪었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힘들 건 없었어요.”

행자 생활을 마치고 그는 운문사 승가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참 궁금했어요. 기독교에선 예수님의 직설이 담긴 ‘신약성경’이 있잖아요. 저는 그걸 외우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승가대학에선 부처님의 직설이 담긴 팔리어 초기 경전을 배우질 않더군요. 중국 선사들의 얘기만 가르쳤죠.” 그가 궁금한 것은 ‘붓다’였다. 붓다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어땠나. 그걸 보고 싶었다.

결국 그는 미얀마의 마하시명상센터로 떠났다. “거기서 2년간 목숨을 걸고 수행을 했어요. 부처님 당시의 초기불교수행법으로 말이죠. 그때 절감했어요. 불교는 정말 ‘수행의 종교’구나.” 그는 태국의 위백아솜 위파사나 명상수도원에 가서도 수행을 했다.

그런 뒤 미국으로 갔다. 법정 스님을 찾아가 인사도 올렸다. 배웅을 하던 법정 스님은 그에게 “뒤돌아 보지 말고, 앞으로 달려라”고 말했다. 일아 스님은 미국의 뉴욕 스토니브룩 주립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LA로메리카 불교대학의 교수가 됐다. LA갈릴리 신학대학원에선 불교학 강의도 했다.

일아 스님은 이번에 책을 내며 “저는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인세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출판사 측에 “책값을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3만5000원 예정이던 책값이 2만8000원으로 떨어졌다. 일아 스님은 “초기 불교에 대한 한국불교의 부정적인 시선이 이 책을 통해 깨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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