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 아버지 영상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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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아버지의 권위,가부장의 풍모는 사라졌는가. 새영화.가족'을 준비중인 이명세감독은 이 질문에“사라졌다.그러나 죽지는 않았다.아버지의 희생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다”고역설한다. 요즘 우리 문화계에는 변화의 조짐이 두드러진다.기성가치에 도전하는 자유분방함이 활개치는 한편에서 개성에 밀려 주춤하던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족,고향,촌스럽지만 마음의 여유를 느끼게 하는 정겨운 옛것들이 복고풍을 타고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족간의 사랑은 핵가족 안에서조차 단절이 심한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문학.TV드라마등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였다.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통적인 가정의 기둥이었던 아버지가 자리했다. 아버지의 존재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새로운 아버지상을 모색하는 시도가 두 중견감독에 의해 영화계에서도 이뤄질 전망이다. 장길수감독이 김정현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영화.아버지'를 준비하고 있고,이명세감독도 자작시나리오.가족'의 영화화에 나섰다..아버지'는 시한부인생을 사는 50대 아버지의 가족사랑을 그려나갈 예정이고,.가족'은 60년대를 배경으 로 평범한 30대 후반 아버지의 모습을 잔잔히 그리게 된다. 소설.아버지'가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아버지의 외로움과 가족사랑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 .아버지'는 소설 속의 아버지-딸 관계에 더 비중을 둘 계획. 장길수감독은“소설에서 아버지에게 원망의 편지를 건넸던 딸과의사이를 중심으로 부모 자식간의 단절과 몰이해,오늘날의 가족 해체문제를 부각시킬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아버지'제작의 어려움은 아버지의 이미지에 딱 맞는 배우가 마땅치 않다는 점.현재 탤런트 박근형씨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편 안성기가 아버지역에 캐스팅된 이명세감독의.가족'은 60년대의 서민층 아버지가 주인공.요리사인 그는 출세와는 거리가 먼 소극적인 성격의 보통남자.아내와 아들에게 큰소리치지 않는 조용한 아버지로 권위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감독은 이런 어깨처진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을 확인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가족'은 또한 구멍가게.요강.구공탄.군고구마.몽당연필.고드름등 60년대의 정겨운 풍경들을 재현해 기성세대에게 어렸을적 향수를 떠올리게 해줄 계획이다. 이감독은“겉으로 보면 아버지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이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사라짐으로써 부활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려 한다”고 말한다.이응경이 아내로 등장하는 영화.가족'은 오는 5월 촬영을 시작해 연말께 개봉할 예정이다. 〈이남 기자〉 요즘 가족의 공동체적인 삶에 향수를 느끼게 하는 복고 움직임이 영화.드라마등 문화계에 일고 있다.사진은 옛날 삶을 재현해 보여주는 이승은씨의 인형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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