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위기 극복 키워드는 ‘다 함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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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런 위기 상황에 닥칠수록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두 가지 자세로 리더십을 보여주면 좋겠다. 첫째는 이 같은 난국을 어떤 전략으로 극복해 나갈 것인지 좀 더 분명하게 보여주어 국민이 희망을 갖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국민이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면 위기 극복을 향한 발걸음은 훨씬 가벼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같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빈곤층, 특히 극빈층에 대한 특별한 정책적 배려로 국민이 함께 단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위기 극복과정은 계층 간 분열이 심화되기 쉬운 상황이다. 그렇기에 위기 극복 과정에서 제일 먼저 어려움을 당하게 마련인 절박한 극빈층을 끌어안아 함께 가는 한국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위기 극복의 가장 우선적인 단기 대응책으로는 재정과 금융 등 정책도구를 활용, 신용경색을 해소해 돈이 돌게 만들고 내수 증대로 경기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적시에 과감한 지원과 구제 조치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기적 차원에서 우리 금융체제의 관리감독 기능을 좀 더 정교하고 효율적일 수 있도록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세계화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만큼의 경제발전을 해 왔다. 문제는 세계 금융시장의 자본이 한국 경제 안으로 들어와 나누어지는 과정을 감독하는 기능과 체제가 정교하게 정비되지 않은 게 문제였다. 10년 전의 IMF 위기나 지금의 위기 발생에도 금융시스템의 미비가 한몫했던 것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단기· 중기 처방뿐 아니라 장기 전략도 있어야 한다. 10년 전 IMF 위기의 극복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IT 벤처산업에 집중 투자하여 이 분야를 성장의 동력으로 키워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셈이었다. 이번에는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미래 한국 경제의 활로를 열어갈 수 있기 바란다. 정부가 이미 이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플랜과 이행 전략을 짜고 이것을 서둘러 국가사업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 이유가 있다. 이제까지의 서구의 산업문명은 원유나 천연가스 공급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있었다. 그런데 서방의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원유 공급이 이제 정점을 지나 앞으로는 감소해갈 것이라고 진단한다. 심지어 1999년 세계적인 석유회사 ARCO의 회장인 마이크 바울은 “우리는 석유시대 종말기의 초입에 진입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한편으로 중국과 인도의 고속성장으로 석유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 공급은 줄어들 것이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자원외교를 열심히 해도 공급 확보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 결국 남은 길은 에너지 절약과 대체에너지 개발뿐이다. 게다가 교토의정서 이후 국제 기후변화 레짐이 강화될 텐데 이제 당장 우리에게도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국제 압력이 밀려들 것이다.

이처럼 2중, 3중의 압박 요인들이 우리에게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 발전 전략이 시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녹색성장 부문에의 집중 투자를 어떻게 고용창출로 연결시킬 것인지 머리를 짜내 생각해야 할 때다.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이 길이 선진국 진입을 위해 한국이 어차피 거쳐야 할 관문이라면, 지금의 위기를 그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단·중·장기 전략과 함께 정부는 우리 사회 빈곤층을 끌어안는 정책적 배려를 통해 함께 가는 따뜻한 한국 사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오바마 당선자는 “미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다”는 말을 했다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세계 경제위기 발생 과정을 보면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에 대해 치열했던 그동안의 보수냐 진보냐의 논쟁이 무색해짐을 느끼게 한다.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 싸움은 이제 그만두고 이제 내 땅 위에 사는 땀냄새 나는 현장 속의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도울 것이냐에 노심초사할 때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지금이라도 종부세 완화조치에 버금가는 극빈층 대상의 자활 지원 프로그램을 내놓는다면 우리 사회는 위기 극복을 위해 훨씬 더 단합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