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보는 세상] ‘내 자식 내 맘대로…’ 그런 생각은 버리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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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고금
마해송 지음, 우리교육, 240쪽, 6000원

내가 나인 것
야마나카 히사시 지음, 고바야시 요시 그림
햇살과 나무꾼 옮김, 280쪽, 7500원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어른들 때문에 많은 아이가 오늘도 영혼에 상처를 입고 멍이 들어 정상적인 삶의 길을 포기한다. 어른들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에게 해주지 않은 게 없는데 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끝없는 보상을 요구한다.

아이는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된, 그런 부모의 간섭을 못 견뎌 한다. 포장된 사랑의 경우 대개 아이의 처지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사랑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해주면서 아이를 볶는 경우는 좀 낫다. 많은 부모가 아이를 낳기만 했지(자신들의 말을 빌리자면 껍데기만 낳았지 속까지 낳은 건 아니면서도!) 의무는 저버리고 끝없는 잔소리와 쉼 없는 구박으로 아이를 대한다.

이에 많은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진짜로 낳았는지 어쨌는지 아리송해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하며 견딘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부모는 걸핏하면 아이에게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거야! 네 진짜 부모가 곧 데리러 올 거야!

아이들은 그래서 집을 뛰쳐나가기도 한다. 그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그러는 거면 자랄 때 으레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집안에서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그러는 거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아동문학 동네에서는 그동안 이런 문제를 애써 외면해 왔다. 꽃과 별과 흰 구름이 아이들의 삶보다 더 앞서 다루어지다 보니 그런 것이다. 고통받는 아이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런 아이들에게조차 꽃과 별과 흰 구름을 보며 상처를 씻고 아름답게 자라달라고 강요했다.

그런데 오래 전에 바로 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작가가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화인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쓴 마해송(1905∼66)이다. 마해송은 『모래알 고금』에서 아버지에게 구박받는 아이를 다루었다. 지금 보아도 너무나 생생할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 돼지라는 별명을 지닌 을성이는 툭하면 아버지에게서 온갖 윽박지름을 당한다. 특히 맏이인 갑성이하고 비교를 하며 둘째인 을성이를 차별하는 아버지 모습은 단순히 이야기 속의 아버지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로 이 땅의 아버지 모습이 어떠한지를 뚜렷이 드러내준다. 아버지의 맏이에 대한 집착이 둘째아이의 가슴에 어떻게 상처를 입히고, 나아가 가족들까지 가세해 맏이에 비해 못난 둘째를 가족 안에서 어떻게 ‘왕따’시키는지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어찌 보면 아버지가 맏이에게 그토록 집착할 까닭도 없고, 둘째를 특별히 더 미워해야 할 까닭도 없다. 또 부화뇌동하는 어머니의 태도도 석연치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한 설정 모두 상황을 더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끝에 가서 집 나간 을성이를 다시 찾은 아버지의 자기 고백을 통해 다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가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모래알 고금』보다 10년쯤 뒤에 일본에서는 야마나카 히사시가 『내가 나인 것』을 발표했다. 이 작품 역시 지금 보아도 전혀 낡지 않다. 더더구나 일본이니 한국이니 하는 지역적 차이도 없다. 아이들 문제는 세계 공통이니까! 이 작품의 주인공인 히데카즈 역시 『모래알 고금』의 을성이처럼 집을 뛰쳐나온다. 엄마의 간섭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다. 그런데 을성이가 집을 뛰쳐나올 땐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히데카즈가 집을 뛰쳐나올 땐 어떤 통쾌감조차 느껴진다. 왜 그럴까? 가출이 적극적인 자기 성장과 맞물려 있느냐, 아니면 보이지 않는 힘에 그냥 끌려가느냐 하는 차이가 있어서일 것이다. 히데카즈의 엄마 역시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결코 나쁜 엄마가 아니다. 그러나 히데카즈 처지에서 보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잔소리가 많은 엄마다. 『내가 나인 것』은 특히 가족관계가 어떻게 뒤틀려 가는지, 아이는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연히도 『모래알 고금』과 비슷한 상황도 있지만 문제 해결 방식이나, 등장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방식은 달라 두 작품을 비교해 가며 읽어도 좋다.

무조건 아이들 편을 무조건 들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아이였을 때 어땠는지를 늘 돌아볼 일이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아이가 또 받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박상률(동화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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