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개그 ‘개콘’ 포에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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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07면

요즘 KBS-2TV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아주 재미있어졌다. 옛날 같은 대박 코너는 없지만 출연진들이 그동안의 경륜을 바탕으로 꼭 맞는 맞춤옷을 입은 듯한 안정감을 뽐낸다. 몇 달 전만 해도 팬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개콘’에 아연 활기가 돌아온 건 역시 정통 연기파인 ‘안어벙’ 안상태와 유세윤이 제자리를 찾으면서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난~”이란 단 한마디로 웃음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리는 힘은 안어벙만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연기력이다. 가여워 보이는 교묘한 시선 처리와 목소리 조절로 힘없이 시작해 ‘우주선에 타야 할 원숭이로 오해받아 대신 갇혀 버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뒤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고!”의 절규로 끝맺는 ‘뜬금뉴스’는 처량함 속에서 웃음을 유발해 내는 절묘함이 돋보인다. 이전 비슷한 컨셉트로 큰 반응을 못 얻었던 ‘누렁이’의 실험이 여기서는 완벽히 제자리를 찾았다.

유세윤은 그동안 키워 왔던 ‘뻔뻔함’의 캐릭터를 버릇없는 손자로 딱 떨어지게 연기해 내며 반전의 즐거움을 안긴다. “할머니, 왜 찬물에 손 담그고 빨래를 하셨어요” 하다가 “드라이 맡겨야 된다고 했잖아요!”라며 벌컥 화를 내는 ‘싸가지’ 없는 손자라도 그 세밀한 연기 앞에선 미워할 수 없다. 연기력 하면, 폭발적인 에너지의 신봉선도 핵심 인물이다. ‘대화가 필요해’ 코너가 막을 내려 아쉽고,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단 한 번의 미소도 없이 ‘은박지로 감싼 도시락 반찬’의 중금속 오염 위험과 ‘사진을 넣을 수 없는 소녀시대의 앨범’을 고발하는 황현희의 ‘소비자 고발’은 현실의 세밀한 관찰과 기존 프로그램의 패러디를 통해 풍자의 유머를 안겨 주는 발군의 코너다. 웃음은 얼핏 지나치기 쉬운 문제점을 ‘지나치게’ 파고드는 사소함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진지함 사이의 충돌에서 생겨난다.

실제 ‘소비자 고발’에까지 초대받은 그의 고발 정신이 ‘아무리 먹어도 사나이 울리지 않는 라면’에 숨겨진 비리와 ‘빠삐놈’ 같은 위대한 우리 노래를 뻔뻔히 표절하는 팝송을 질타해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박성호와 김대범의 ‘도움상회’는 극중극이라는 포맷도 돋보이고 소재를 다양하게 버무리는 솜씨에다 세상사를 살짝 비트는 냉소까지, 최근 등장한 가장 돋보이는 코너다. ‘박대박’ 역시 기존에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는 유행어에 의존했던 말장난에서 한 단계 뛰어올라 “담배를 끊으려면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식의 억지를 통해 검증 안 된 논거로 펼치는 궤변의 유머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릿속에서 그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만든다. 남다른 슬랩스틱 코미디 자질로 끝내 꽃을 피운 ‘달인’ 김병만은 꾸준하고, 한동안 부진하던 김준호까지 ‘강마에’를 패러디하며 살아났다.

이처럼 최근의 개콘은 특별한 대박 코너나 유행어 없이도,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과 소통하기 힘든 현대인들이 기대어 버티는 허세를 제 궤도에 맞는 연기로 펼쳐 내고 있다. 좀 더 강력한 세태 풍자나 과감한 정치·사회 풍자도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버라이어티와 토크가 대세인 요즘 시대에 꿋꿋하게 상상력과 풍자로 우리를 웃겨 주는 ‘개콘’에, “국민 개그 개콘 포에버!”를 외쳐 주고 싶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filmpo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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