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미뤘던 ‘생산·유통 군살빼기’ 이참에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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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채산성이 떨어지는 노후 반도체 라인 두개를 정리하기로 했다. 사진은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경기도 기흥 삼성전자 S라인 모습. [중앙포토]


그러나 인력 감축이 불황에 대비하는 유일한 생존대책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양혁승(연세대 교수·경영학) 정책위원장은 “정리해고가 단기적으로 비용을 줄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남은 인력에 과부하를 걸리게 해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직 충성도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대기업들은 인력보다 생산·유통라인을 조정하거나 사업부문 재분배 등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채산성이 떨어지는 노후 반도체 라인 두 군데를 내년 중에 정리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회사는 경기도 기흥 공장 내 9개 라인 가운데 도입한 지 20년이 넘는 3라인의 가동을 내년 1분기까지 완전 중단한다. 4라인도 내년 중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두 라인은 150㎜(6인치) 웨이퍼를 가공해 휴대전화용 카메라 이미지센서(CMOS)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 왔다. 퇴출 라인의 활용 방안은 미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최신 300㎜ 라인에 비해 효율이 떨어져 정리하는 것”이라며 “전체 반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미만이어서 감산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업그레이드나 신규 라인 개설 예정 없이 기존 반도체 생산라인을 폐쇄하는 것을 불황에 대비하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실제로 반도체 업체들은 최근 150㎜뿐 아니라 200㎜(8인치) 라인도 대부분 정리하고, 300㎜로 바꾸는 상황이다. 이미 하이닉스반도체는 올 들어 200㎜ 라인 공장 5개 가운데 중국 HC1·미국 유진 E1·충북 청주 M9·경기 이천 M7의 가동을 중단했다. 마지막 남은 청주의 M8에서도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


감산이 잇따르는 석유화학 업체들 사이에서도 현재의 위기를 경쟁력 확보를 통한 재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한화석유화학은 최근 세계적으로 범용 LLDPE(선형저밀도 폴리에틸렌) 시장이 공급과잉 단계로 접어들고 수익성이 악화되자 전선용 LLDPE 개발에 집중했다. 시험생산에 나선 지 9개월 만인 7월 상업생산에 성공했다. LG화학은 신기술을 적용해 추가 설비투자 없이 정밀화학 원료인 NPG의 생산규모를 연산 1만8000t에서 5만t으로 늘렸다. NPG는 자동차와 선박용 페인트에 들어가는 고광택 ·고부가 원료다.

KT는 267개인 KT플라자(옛 전화국 창구)를 내년 2월까지 56개로 줄인다. 대신 전국 2000여 KTF ‘쇼’ 매장에서 전화요금 납부, 상품 가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56개 KT플라자 운영도 위탁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그간 KT플라자에 근무하던 직원 1600명 중 600명의 소속도 위탁업체로 바뀐다. 이 회사 마케팅전략본부의 최선학 부장은 “남는 직원 1000명도 영업 등 좀 더 생산성 높은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구를 없애고 남는 공간은 외부에 임대를 주기로 했다. 각 지역 KT 건물은 대개 중심가에 있어 임대수익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완성차 5사도 감산과 특근 중단 등을 통해 생산량을 줄이고 있는 가운데 기아차는 경기도 소하리 공장의 카니발 생산라인에서 잘 팔리는 프라이드를 함께 생산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해외에서도 플라스마 디스플레이패널(PDP) 분야 1위인 파나소닉이 일본 내 두 공장을 아마가사키 한 곳으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남는 이바라키 공장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의 개발·생산 거점이 된다.

생산라인 개편과는 별도로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AM OLED 부문을 떼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최근 설립했다. LG도 전자계열 부품사인 LG이노텍과 LG마이크론도 올 연말까지 합병하기로 했다. 대기업들의 사업분야 조정도 이처럼 활발하다. 홍덕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990년대 일본 캐논은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잃어버린 10년’을 탈출했다. 인텔도 2001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후 불황기에 지속적인 투자로 경쟁자를 따돌렸다”고 말했다. 그는 “불황 극복을 위한 단기적 위기 대응도 중요하지만 5~10년 미래를 보는 혜안과 강한 의지가 경영진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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