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공정수사위해 특별검사제 도입-우리법에 안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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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보사건으로 온 국민이 울분과 탄식을 쏟고 있는 가운데 여당은 특별검사제를 새로 만들면 검찰의 존재가치가 훼손된다는 이유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야당은 권력의 핵심부를 조사해야 하는데 대통령에 예속돼 있는검찰에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로 특검제 채택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검제 도입 문제가 단골메뉴로 등장,수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검찰의 기를 꺾어 놓기 일쑤였다.사태가 이렇게 된데는 물론 정부와 검찰의 책임이 크다. 많은 사건을 처리해온 검찰의 수사 자세가 국민의 찬사를 받기는 커녕 따가운 질타와 비판의 대상이 돼 왔기 때문이다.민망하고 딱한 일이지만 검찰도 억울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자성하고 분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일이다. 사실 특검제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에서는 생소한 제도다.미국이 채용하고 있어 많이 알려졌지만 이를 따르는 나라는 거의없다. 미국의 연방검사는 대통령과 정치적 진퇴를 함께 하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돼 있어 대통령등 고위공직자가 범죄혐의를 받고있을 때 수사하겠다고 나설 객관적 명분이 없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 법무장관은 예비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 특별검 사에 의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연방항소법원에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그 동의를 받는다. 우리나라 법제도는 이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 검사는 철저한 신분보장을 받고 있어 대통령과 정치적 노선을 함께 할 필요도 없고 정부가 바뀐다고 자리에서 물러날 이유도 없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 검사는 미국 검사같은 정치성이 없 다. 따라서 법률문화의 전통과 배경이 다른 미국식 특검제를 도입하는데에는 난점이 많다. 국회 주도 아래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를 진행시키는 것은 입법부에 의한 행정권 침해라는 헌법상의 문제 제기 소지가 있다. 또 현행 재정신청 제도와의 충돌을 해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실효성에도 의문은 있다. 방대한 사건을 조사하려면 특별검사의 수사를 보좌할 보조인력이필요한데 불신받는 기존 수사기관으로부터 협조를 받는다는 것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고 그렇다고 달리 동원할 인력이 준비된 것도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특별검사가 자신의 정치적 야심에 의해 수사를 편파적으로 진행시킬 경우 이를 견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법 만들기를 좋아한다.제도를 뜯어고치고 선진국의좋은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열심이다.그러나 선진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법이나 제도가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다.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공정하고 성숙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무랄데 없는 많은 법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실패와 좌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그것을 운영하는 사람 탓이다.이제 우리도 제도타령은 그만 하고 사람을 키우고 단련시키는 일에 정력을 쏟아야 한다. 특히 검찰은 .그래도 설마 이번에야'하면서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국민은 참고 기다리는 일에 길들여져 있지만 그렇다고 항상 관대한 것만은 아니다. 徐翼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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