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파워엘리트 ⑨ 데저리 로저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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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 열흘 뒤인 14일 시카고의 한 고급 콘도미니엄에선 오바마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오바마 두뇌의 절반’ ‘큰누이’라는 등의 별명을 지닌 발레리 재럿(백악관 선임고문 내정·본지 11월 17일자 2면)의 52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이 자리엔 오바마의 시카고 사단이 총집결하다시피 했다. 오바마는 이날 오전 흑인 여성 재럿에게 백악관 선임고문을 시키겠다는 사실을 미리 통보했다.

이 파티는 오바마·재럿과 피부색이 같은 데저리 로저스(49·사진)가 열었다. 오바마 부부와 시카고 사단이 대거 참석한 건 로저스도 오바마 부부와 절친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24일 대통령 특보 겸 백악관 의전비서관에 내정됐다. 흑인이 미국 대통령과 외국 정상의 국빈만찬 등 백악관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와 파티를 주관하고 참석자를 선정하는 책임을 지게 된 건 처음이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의전비서관은 백악관 주인이 될 오바마 부부를 미국과 세계에 소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며 “직책의 이름이 풍기는 것보다 힘이 훨씬 센 자리”라고 보도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의전비서관을 지낸 앤 스톡은 WP와의 인터뷰에서 “의전 비서실은 하나의 작은 정부기관을 운영하는 것과 같다”며 “의전비서관은 대통령 부부의 선호를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권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재럿은 “오바마가 전략적으로 로저스를 발탁했다”며 “이번 결정엔 백악관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개방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백악관에 초대받는 사람은 1년에 12만5000명 정도나 된다. 오바마 시대가 열리면 이 숫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백악관 문턱을 넘는 사람들의 구성도 달라질 전망이다. 지위나 재력에서 상위 랭킹에 들지 못하는 사람, 흑인 등 소수계 사람들이 백악관 행사나 파티에 더 많이 초대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로저스는 오바마 부부의 오랜 친구다. 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 땐 캠프의 선거자금 모금팀에서 활동했다. 올 1월엔 오바마를 위해 1인당 입장료가 1000달러인 ‘웰컴 홈’ 만찬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모교인 명문 사립 웰즐리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주 정부에서 로토 관리 국장을 지냈고, 천연가스 회사 피플스 에너지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올여름엔 보험회사 알스테이트 인슈런스의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 프로그램 담당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카고의 유명한 과학산업박물관 이사회 부의장이기도 한 그는 시카고에선 잘 알려진 여성 기업인이다. 지난해 시카고 지역 경제 잡지 ‘크레인스 시카고 비즈니스’는 그를 ‘주목해야 할 여성 25인’으로 선정했다.

그는 오바마의 후원자이자 친구인 흑인 기업가 존 로저스(50)와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존은 투자회사 에어리얼 인베스트먼트 회장이자 CEO이며, 오바마의 취임식 준비위원장이다. 그는 미셸 오바마의 오빠 크레이그 로빈슨 덕분에 오바마를 만났다. 오리건 주립 대학의 농구팀 수석코치인 로빈슨은 프린스턴대 농구선수로 함께 활약했던 존을 오바마에게 연결해 줬다. 역시 농구선수 출신인 오바마는 틈만 나면 존을 불러 농구를 했다. 존은 오바마에게 투자의 달인인 워런 버핏을 소개했다. 데저리와 존 사이엔 예일대에 다니는 딸이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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