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代 이 사람을 주목하라] 23. 열린우리 박홍수 당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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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박홍수(비례대표) 당선자는 부농(富農)의 아들이었다. 경남 남해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집안의 가업을 이으려고 농대(경상대 임학과 74학번)에 진학했다. 대학과 군 복무를 마친 뒤엔 곧바로 고향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그가 농민운동에 눈뜬 것은 1982년 마을의 이장을 맡으면서다. 4년간 이장 일을 하면서 아무리 일해도 빚만 늘어가는 농촌의 현실에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88년엔 지역의 농민운동단체 대표를 맡았다. 10여년간 모든 정열을 농민운동에 쏟았다.

그것은 그가 99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이하 한농연) 회장이 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한농연을 이끌면서 농가부채특별법 제정과 마사회의 농림부 이관 등을 요구하는 등 농민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고속도로 점거 시위를 주도하다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때 20만평 가까운 농장에 벼.유자농사를 짓고 한우.돼지를 키우며 큰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농민운동에 앞장서면서 형편이 나빠졌다. 어려운 처지의 농민 18명의 빚 보증을 섰다가 5억여원을 날리기도 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그가 신고한 재산은 '마이너스(-) 2억원'. 그는 "돼지 등 가축을 많이 보유해 그 정도는 아니나 가축은 아무리 많아도 (신고 대상) 재산으로 쳐주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가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2002년 한농연이 주최한 각 당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를 보고서다. 이때 "노무현을 찍으면 그래도 농촌에 희망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다. 이후 그는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로 참여했다.

국회의원으로서 그가 가진 목표는 농업관련 법.제도 개선이다. 특히 "지난 20여년간 농업 생산성 향상률을 크게 웃돌았던 농촌금융 이자를 끌어내리는 일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朴당선자는 "농정(農政)의 가장 큰 문제는 불신"이라며 "앞으로 '여당의원입네'하며 폼을 잡기보다 농민의 대표로서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민노당의 강기갑 당선자 등 농민 출신과 언제든 협력하겠다고 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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