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회오리>부도 배경.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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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의 한보철강 부도는 일반의 예상보다는 빨랐다. 누구도 납득키 어려운 특유의 경영수완을 발휘해 왔던 그였기에 이번에도.기발한 묘수'를 쓸것으로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쉬쉬하는 가운데 지난해말 4천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을 때만해도 아무 문제없이 잘 넘어가는듯 했다.그러나 올해초로 접어들면서부터 사태가 심상찮게 바뀌어 갔다.무엇보다 제일.조흥.외환.산업등 4개은행의 공동보조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보측의 추가대출 요구에 외환.조흥이 거부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때부터 금융가에서는 한보가 결코 오래 못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돌기 시작했다.은행장들의 공동보조가 깨졌다는 것은정부가 이 문제에서 발을 빼고 있음을 뜻했다.
아무리 기발한 鄭총회장이라 하더라도,또한 아무리 막강한 배경이 뒤를 봐준다 해도 한보가 지니고 있는 경영능력.자금력으로는그 엄청난 자금과 기술력이 들어가는 제철업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鄭총회장이 그간에 벌여온 사업내용이나 스타일을 살펴보면 두가지 유난한 점을 발견할수 있다.
첫째,그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수 없을 정도의 야심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80년에 정부가 처음 추진하던 LNG사업을 수송에서부터 저장기지건설에 이르기까지 통째로 먹으려고 했다든지,최근들어서도 한보철강에 그처럼 떼돈을 퍼부으면서도 무려 16조원에 이르는 시베리아 가스전 사업을 또다시 벌였던 것등이 바로 鄭총회장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둘째,鄭총회장의 사업주변에는 항상 정치적 연계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전두환(全斗煥)시대와 노태우(盧泰愚)시대모두 예외가 없었다.다른 여느 기업들의 평균적인 정경유착과는 정도를 달리할 정도로 유별났었다.
한보가 건설업 이외에는 달리 사업다운 사업없이도 국내재계에서그토록 손바람을 일으켜 온 배경에는 늘 이같은 파격성을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鄭총회장 일가가 비록 한보철강에서 손을 뗐으나 아직도 많은 문제를 남겨 놓고 있다.
당장의 숙제는 한보를 맡을 제3자를 찾는 것이다.이것 자체가쉽지 않으려니와 또 다른 문제는 한보가 지금까지 뿌려온 정치적씨앗을 어떻게 처리하느 냐도 주목해야할 점이다.그동안 덮여져 온 상태에서 무사했던 문제들이 불거져 나올 경우 정치권으로부터의외의 돌출변수들이 야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특히 그동안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자금지원을 해온 은행들에 대한 책임추궁문제 또한 그대로 넘어가기 힘든 대목이 될 것이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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