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리포트>옐친 건강악화로 러시아 정국 오리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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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건강악화설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정치권에선 옐친의 무력화 내지 퇴진을 가상한 정국시나리오가 무성하다.
현재 크렘린 주변에서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세가지다.
첫째는 옐친이 현재처럼.병약한'상태로 병원이나 별장에서의 통치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 경우 러시아정국은 측근들의 전횡과 권력나눠먹기,야권의 공세,쿠데타 가능성등으로 편안한 나날이 없게될 것이다.
지도체제가 불안한 상태에서 경제 역시 엉망이 될 것이며 러시아로서는 가장 기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둘째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는 방법으로 대기업들이 지지하는 시나리오다.
대기업들은 입헌군주제가 정국안정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옐친 이후 엉뚱한 지도자가 나타나 시장경제와 사업에 타격을 가하는 것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대통령실이 로마노프왕가 후손에게 특별지위를 부여하는 포고령을 마련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셋째는 무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권한 축소를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이 안은 크렘린을 제외하고 연방회의(상원)나 국가두마(하원)등 정치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로서 세가지 시나리오중 어느 것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은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또 옐친대통령이 어느정도 건강을 회복하기만 한다면 표면상 이런 얘기들은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스크바 정가 소식통들은 설사 옐친의 건강이 나아지더라도 세가지 시나리오는 완전 소멸하지 않고 단지 잠복할 것으로내다본다.
러시아의 일간 네자비스마야 가제타지는 이와 관련,“옐친을 이미 두번 배신한 측근들이 마지막이자 세번째 배신음모를 꾸미고 있다”며“첫번째 배신은 대선캠페인중 환자인 대통령을 춤추게 만든 것,두번째는 완쾌되지 않은 그를 병원에서 내몬 것,그리고 세번째는 더 이상 완쾌되지 않을 옐친을 머지않아 완전 매장시키는 것이 될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모스크바=안성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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