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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 값싸고 수준 높아져 구청 문예회관 공연이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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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1일 오후 서울 구로구청이 세운 복합 문화공간인 구로아트밸리의 예술극장. 한복 차림의 할머니, 살포시 손을 맞잡은 중년 부부, 엄마를 따라 온 초등학생 등 다양한 관객 300여 명이 퓨전 국악그룹 ‘슬기둥’의 연주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 7시30분 막이 올랐다. 장구·아쟁 등 전통 악기에 베이스기타·신시사이저 등 ‘양악기’로 무장한 슬기둥의 연주는 금세 관객을 사로잡았다. 태평소 연주자가 민요 ‘태평가’의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대목을 부르자 할머니 관객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게스트로 출연한 록그룹 ‘백두산’의 김도균이 신들린 듯 기타를 연주하자 스커트 차림의 가야금 연주자가 몸으로 박자를 맞추며 현을 뜯었다.

21일 서울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퓨전 국악그룹 ‘슬기둥’의 공연을 300여 관객이 지켜보고 있다. [구로아트밸리 제공]


이날 공연을 관람한 구로아트밸리의 단골 관객인 성태숙(41·주부)씨는 “웬만하면 공연을 보며 흥분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달아올랐다”고 말했다. 성씨는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5~6년 전부터 공연장을 찾았다. 서초동 ‘예술의전당’을 열 번 넘게 찾았을 정도다. 하지만 7월 구로아트밸리가 개관한 뒤 먼 걸음을 하지 않는다.

서울시 자치구들의 문화예술회관이 달라지고 있다. 썰렁한 강당에 조명만 설치한 채 진행하는 ‘구민회관 공연’을 연상하면 오산이다. 음향·조명 등 시설이 나아진 것은 물론 전문가를 채용해 수준 있는 공연을 한다. 일반 공연장에 비해 입장료도 저렴하다.

◆싸고 수준 높은 공연=2004년 문을 연 노원문화예술회관은 실속 있는 공연 유치로 이름 높다. 그동안 정명훈·조수미·강수진 등 공연계의 수퍼스타들을 ‘이례적으로’ 불러들였다. 이달 초에는 주한 이탈리아대사관·롯데백화점의 후원을 받아 ‘아름다운 이탈리아 음악여행’ 콘서트를 열었다. 서울대 음대 교수인 소프라노 김인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공연한 이탈리아의 테너 알도 카푸토 등이 참가했다. 이전 구민회관 시절에는 볼 수 없던 공연이다.


마포아트센터는 9월 남진 콘서트를 유치했다. 3만∼6만원을 받았다. 다른 공연장보다 1만원 이상 싼 가격이다. 민윤기 공연홍보부장은 “구민·회원에게는 20%를 할인해 주기 때문에 공연에 따라 일반 공연장보다 절반 가까이 쌀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에서 3만~4만원 정도인 슬기둥 공연의 경우 구로아트밸리에선 7000~1만5000원에 그쳤다.

◆획일적인 공연장은 문제=자치구 문화예술회관들은 주로 민방위교육장·결혼식장 등으로 사용되던 구민회관을 대체하며 1990년대 중반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 시내 13개 자치구가 문화예술회관을 갖고 있고, 강동·용산구는 건립 중이다.

서울시는 ㎡당 250만원씩 6611㎡까지 건립비를 지원해 구 문화예술회관 확충을 돕고 있다. 하지만 구청마다 하나 같이 공연장·갤러리 등을 갖춘 획일적인 문예회관을 짓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구로아트밸리 김석홍 공연사업팀장은 “연극·콘서트·무용 등 여러 장르를 모두 수용하는 복합공연장보다는 여러 개 구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되 구마다 서로 다른 전문 공연장을 두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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