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겁쟁이라도 괜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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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천하무적 빅토르
드니 베치나 글, 필립 베아 그림, 이정주 옮김, 개암나무
72쪽, 8500원, 초등 저학년 

겁 많고 소심한 아이들을 위한 동화다. 그렇다고 겁쟁이였던 주인공이 용감한 영웅으로 환골탈태해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드라마는 아니다. 잔뜩 움츠러든 아이들에게 용감해지라고 강요하는 대신 “괜찮아” 다독이는 이야기다.

주인공 빅토르에게 세상은 온통 무서운 것 투성이다. 옷장 속 괴물이나 지하실의 거미, 긴 터널과 높은 다리 등이 모두 무섭다. 가장 무서운 것은 발표시간이다. 아홉 살 때였다. 발표 순서가 돌아왔다. 열이 확 오르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굴이 빨개졌어!” 와하하 친구들의 웃음이 터진 순간. 빅토르는 오줌을 싸고 만다. 그날 이후 빅토르는 외톨이가 됐다. 악순환의 고리였다. 겁이 나니까 자꾸 실수를 하고 바보같이 굴게 됐다. 점점 더 말이 없어져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외톨이가 되니까 소심해지고 별 것 아닌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다. 해결책이 필요했다. 빅토르는 안전한 도피처를 만든다. 전자총과 칼·용접기 등이 장착된 천하무적 갑옷을 만든 것이다. 갑옷을 입은 빅토르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당당하게 발표도 했다. 가면을 쓰고 있어 아무도 빅토르의 얼굴이 빨개졌는지 알 수 없었다. 빅토르는 평생 갑옷을 입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갑옷 속에서는 자랄 수가 없었다. 영영 어린아이인 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빅토르는 갑옷을 벗고 다시 소심하고 서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별것도 아닌 일에 얼굴이 빨개지고 겁을 먹는 것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란다는 것. 그게 희망이고, 삶의 가치란 걸 빅토르는 믿게 됐다.

아이의 갑옷 역할을 자처하는 부모들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갑옷을 벗어야 아이가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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