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김경호씨 일가족 40일간의 서울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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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12월9일 귀순한 김경호(金慶鎬)씨 일가족등 16명은공항에 도착할 때의 초조하고 긴장된 표정은 오간데 없는 모습이었다.지난해 12월17일의 내외신 기자회견때와 달리 말문이 막히지도 않았다.
점심시간에는 때마침 방영된 일본 스모(씨름)대회 프로그램을 내내 보면서 스모꾼들의 뚱뚱한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아이들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회견장이 마련된 다섯개 방을 연신 오가며 재롱을 떨었다.
서울생활 40일-.그러나 이들에겐 서울은 아직도 낯선 땅이다. 金씨의 셋째딸 명숙(34)씨와 사위 朴수철(38)씨는“북한에서 먹어보지 못했던 불고기를 맘껏 먹을 수 있는게 무엇보다 좋다”고 했다.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은 뉴스지만 드라마는.임꺽정'이 가장 흥미롭다고 한다..임꺽정'은 북한에서도 보았지만 93년을 전후로해서는 탐관오리에 대한 민중항쟁을 의식해서인지 중단했다고 말했다. 朴씨는 여러 TV연속극도 꿰고 있었다.
朴씨는 포부를 묻자“아직 남한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서도“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할 작정”이라고 했다.
金씨의 넷째사위 김일범(28)씨는“서울에 와서 거평프레야에 간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환상지옥등 모든게 신기했다”고 했다. 그는 임신중이어서 회견장에 나오지 못한 아내 명순씨에 대해“북한에서 영양상태가 나빠 유산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고기.
우유를 많이 먹고 있어 우량아를 낳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명순씨의 출산예정일은 다음달 초순이다.
金씨는“.다시 벗은 노예의 멍에를 쓰지말고 돈과 향락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목사의 가르침이 기억에 남는다”며 직업이 주어지면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사회안전부 요원으로 金씨 일가 탈출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던 최영호(30)씨는“지금은 대한민국 역사와 한자를 공부하고 있다”며“남한사회는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고 하니 게으름을피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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