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힐러리를 품었고, 우리는 ‘자기 사람’을 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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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3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주자 토론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左)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웃으며 귀엣말을 던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AFP=연합]

『팀 오브 라이벌스(Team of Rivals)』.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에 가지고 가겠다고 꼽은 책이다. 번역하면 ‘적(敵)들의 팀’. 링컨 대통령이 경선 상대였던 윌리엄 헨리 수어드를 국무장관으로 기용한 사실을 다뤘다. 책이 시킨 대로 오바마 당선인은 민주당 경선의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국무장관직을 직접 제안했다. 매서운 추위를 동반한 경제위기에 직면한 한국에서도 ‘탕평인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적과의 동침’은 한국 정치에서 흔치 않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캠프에서 고생했던 ‘자기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는 관행이 되풀이돼 왔다. 하지만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탕평 인사를 실천한 정부는 반대파들의 저항을 덜 받았다. 본지가 김대중(DJ)·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첫 인사를 수평 비교한 결과에서도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픽 참조>


1998년 임명된 DJ 정부의 초대 장관은 24명, 청와대 수석(급)은 8명이었다. 이 중 대선 캠프에 관여한 인사들은 21명(65.6%)이나 됐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탄생한 정부답게 국민회의나 자민련 출신이 대거 포진한 정치 내각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이규성 재무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등의 라인업에서 보듯이 경제팀만큼은 정권 탄생의 주역과 무관하게 중립 성향의 전문관료 중심으로 짰다. 이게 IMF 위기 극복의 원동력이었다는 평가가 지금도 나온다.

코드 인사라는 평을 들었던 노무현 정부에선 상대적으로 첫 조각 인사에서 중립 성향의 인물들이 많았다. 초대 내각과 청와대 수석진 38명 중 전문관료 등의 중립 인사가 21명(55.2%)으로 많았다. 당시 인사를 주관한 노 대통령의 측근은 “여권 내에서도 비주류였던 노 대통령의 인재 풀이 협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거 캠프 출신이 15명(39.5%)이나 됐고, 발탁 인사 중에서도 이념 성향이 같은 인사들이 많아 탕평 인사란 평을 듣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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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도 노무현 정부와 사정이 비슷했다. 이 대통령은 올 2월 모두 29명의 장관과 수석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경선과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인사가 13명(44.8%)으로 노무현 정부의 39.5%보다 더 많았다. 그 결과 전문관료 그룹이나 외부 출신 인사(15명·51.7%) 비율도 노 정부(55.2%)보다 작았다. 인사 내용도 긍정적이지 않았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란 용어에서 보듯 탕평 인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경선 상대였던 박근혜 전 대표 측 인사들은 조각에서 완전히 소외됐다. 연세대 김성호 교수는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다수파가 아닌 데도 인재 풀을 넓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태우 초대 내각 경쟁력이 최고=대통령 직선제 도입 후 5개 정부의 조각 명단을 분석해보니 노태우 정부 때 인사들이 정권을 넘어 재기용된 사례가 가장 많았다. 88년 노 대통령이 취임하며 임명한 장관과 수석 34명 중 6명(17.6%)이 이후 정부에서 재기용됐다. 김성호 교수는 “노태우 정부 때 기용된 이들은 주로 테크노크라트(전문 기술관료)였다”며 “이념 성향이 약하고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났다”고 분석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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