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아버님이 부른 사랑의 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오늘은 결혼후 처음 맞는 시어머님의 생신이다.남편이 장남이지만 직장 관계로 우리는 수원에 살고 있어 시댁인 부산에는 한달에 한번 꼴로 다녀오곤 한다.이번에 어머님 생신상을 차리기 위해 며칠전부터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성의껏 솜씨를 냈다.
연애하면서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은영아! 넌 아빠가 안계시니 내가 그 자리를 메워주마.그러니까 넌 이제 내 딸이다”하시던 시어머님.함께 차도 마시고 손잡고 자갈치시장에도 다니면서난 며느리가 아니라 큰딸임을 느꼈다.하루종일 없 는 솜씨를 부려 상을 차리고 두분이 현관에 오실 때 박수를 치면서 축하해 드렸다.어머님이 내 평생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생일상 받기는처음이라고 하시면서 너무 칭찬해주는 바람에 난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다.
그런데 상을 물리고 차를 마시면서 모두 어머님 생신을 축하하고 있을 때였다.아버님께서“나도 너희 어머니에게 선물 줄란다”하시는게 아닌가.분명 들어올 땐 빈손이었는데 반지나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어 오셨나.다들 궁금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어머님 손을 꼭 잡으시고“당신 그동안 수고했소.아이들 키우느라 고생만 하고….오늘 생일에 뭘 선물할까 무척 고민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소”라며 잠시 목청을 가다듬으시더니.동반자'란 노래를 지그시 눈을 감으시고 부 르셨다.
“외로울땐 언제나 내마음 달래주던 내인생의 동반자….” 가족들의 환호성과 박수.어머님의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아버님은 그노래를 1주일 넘게 종이에 적어 다니시면서 배우셨단다.또 주위분들이 나이 들어 갑자기 웬 노래냐고 핀잔을 줬다며 머쓱하게 웃으셨다.
하지만 아버님의 그 노래는 어머님 평생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어떤 선물보다 값지고 소중한 그런 선물.이 시대 아버지의 자리가 흔들린다는데,우리 아버님의 자리는 늘 큰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시는 행복의 노래는 언제나 변함없을 것이다.
김은영〈경기도수원시권선구고등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