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질주하던 수입차, 불황 한파에 갇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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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황금알 낳는 거위’라던 수입차 딜러(판매업)가 요즘 ‘빛 좋은 개살구’ 소리를 듣게 됐다. 불과 몇 달 새 분위기가 이렇게 싹 바뀌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고가 내구재에 대한 구매심리를 위축시키면서 딜러들은 ▶판매 부진▶자금 압박▶매장 가치 하락이라는 삼중고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딜러 영업권이 매물로 흘러나오지만 도통 사겠다는 움직임이 없다.

수입차 1위인 일본 혼다의 A딜러는 이달 들어 딜러권을 내놨다. 최근 두 달간 판매가 상반기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재고 누적으로 돈이 묶인 데다 자금이 제대로 조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만 해도 원매자가 줄을 이어 10억원이 넘는 프리미엄이 붙었지만 지금은 문의조차 끊겼다. 이달 들어 폴크스바겐 등 다른 수입차 업체 딜러뿐 아니라 명차인 B·C사의 딜러권이 매물로 나와 있다.

수입차 시장은 상반기만 해도 전년 대비 30% 넘는 판매 증가로 상당수 딜러가 흑자를 냈다. 호황이 당분간 이어질 걸로 보고 본사에 대거 차량 주문을 냈다가 재고로 골머리를 앓게 된 것이다. 혼다의 서울 D딜러는 600대 넘는 재고를 떠안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 수입차 할인이 본격화하면 하반기엔 적자 누적을 견디지 못한 딜러들이 딜러권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코오롱글로텍은 지난달 갑자기 자동차사업본부장을 교체했다. 이 회사는 BMW 판매의 40%를 담당한다. 4월 경기도 분당의 기존 전시장을 10억원 넘는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했지만 지금은 적자가 쌓이고 있다. 7월에는 BMW코리아가 분당에 신규 딜러까지 냈다.


◆땅값 올라 돈 버는 구조= 2005년 400억원을 투자해 서울 강남의 노른자 땅 250여 평에 전시장을 낸 E딜러는 요즘 고민이 많다. 지난달부터 판매가 전년 동월 대비 30% 이상 준 데다 이달 들어선 판매량이 거의 반 토막이다. 상반기 10억원대 흑자를 냈지만 앞으로는 매달 수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당시 평당 1억원에 매입한 부지는 올 상반기 평당 2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시세가 급등했다. 하지만 부동산 침체로 시세가 다시 내렸다.

수입차 딜러들은 차를 팔아 버는 영업이익 못지않게 매장 가치 상승에 크게 기대를 거는 구조였다. 판매에선 매년 수억∼수십억원의 적자를 내도 매장 시세가 오른 것을 바탕으로 자금을 융통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판매 순위 5위권 안에 드는 인기 브랜드 전시장은 통상 10억원이 넘는 프리미엄이 붙었다.

딜러 선정은 공식적으로 ‘임포터(공식 수입업체)’ 권한이다. 기존 딜러가 사업을 그만두려면 딜러권을 반납하면 그만이지만 임포터가 비공식적으로 영업권을 인정해 그동안 수억∼수십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

◆상종가 친 딜러=수입차 전시장은 2002년 100개에서 올해 185개로 늘었다. 내년에는 도요타·닛산 전시장이 더 생겨 200개 돌파가 예상됐다. 상반기 도요타 딜러 모집 때는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뛰어들어 한판 승부를 벌였다. LS·효성 등 대기업과 신라교역·동일고무벨트 등 알짜 중견 기업이 딜러로 선정됐다. 도요타 일본 본사에서 ‘놀랍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기업들이 딜러권을 놓고 경합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해당 회사가 소유한 알짜 부동산을 전시장과 서비스센터로 쓰겠다고 제안했다. 투자비는 웬만한 중견 기업 인수 가격인 500억원을 넘어섰다.

수입차 딜러권 반납은 SK네트웍스가 불을 붙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푸조에 이어 올 8월 볼보 딜러권을 반납했다. 당시 딜러 프리미엄은커녕 누적 적자만 남았다. 이 회사는 현재 다섯 군데 수입차의 딜러를 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 이외에 딜러 사업으로 이익을 내기 어렵다고 보고 올 하반기부터 임포터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 마쓰다와 도입 계약을 남겨 놓고 있다.

엔화 급등이라는 악재 속에서 9월부터 딜러 모집에 들어간 일본 미쓰비시 임포터인 MMSK는 딜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산차 전시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했다가 미쓰비시 측의 요구로 고급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딜러 신청자들이 모두 난색을 표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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