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지금 ‘사회적 기업’이 주목받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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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2000년 초에 자활공동체 형태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사회적 기업은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된 후 이 법에 의해 지금까지 154개의 사회적 기업이 인증되었으며, 인증을 대기하고 있는 단체도 많이 존재한다. 또한 정부는 2012년까지 1000개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민간에서는 많은 나눔형 사회적 기업이 자생하고 있고, 아울러 대학생들의 사회적 기업 동아리들도 활발히 형성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 제공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방식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 주는 나눔형 방식도 있으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혼합해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기관이나 벤처캐피털도 사회적 기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은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비정부기구(NGO)와 구별된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지속 가능하다. 사회적 기업은 기존 공공부문이나 시장이 제공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제공하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기업보다 더 많은 혁신이 요구된다. 서비스 공급과 수익 창출의 동시적 달성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수익을 창출해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 기부하는 나눔형 사회적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나눔형 사회적 기업은 도움의 대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한편 일자리형이나 서비스형보다 자원봉사자들의 접근도 쉽기에 사회 통합에 보다 잘 기여할 수 있다.


영리기업도 나눔형 사회적 기업(착한 기업)에 포함될 수 있다. 미국의 Red Campaign이 그 대표적 사례다. U2의 보컬 보노(BONO)는 저개발국의 빈곤과 질병 해결을 위해 기업들이 나서줄 것을 촉구했고, 여기에 AMERICAN EXPRESS, APPLE, CONVERSE, DELL, EMPORIO ARMANI, GAP, HALLMARK, MICROSOFT 등과 같은 유수의 기업이 참여해 (RED) 캠페인(www.joinred.com)이 탄생했다. 이들은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 중 일부를 약간 변경해 별도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한다. 애플이 빨간색 아이팟 셔플에라는 상표를 붙이는 식이다. 여기서 얻은 수익의 일부를 모아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 등의 질병 퇴치에 기금 1억 달러를 기부했다. 즉 넓은 의미의 사회적 기업에는 자신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사회적 기업의 형식으로 전환한 기업도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기존 기업들이 그동안 조성해 온 기업의 인지도를 함께 나눔으로써 더욱 크고 빠른 사회의 호응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기업과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어떻게 다른가. 사회적 기업은 기업의 이익(일부 또는 전부)을 사용하는 목적이 사전적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지속적으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한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임의적으로, 또 형편이 되는 대로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도 있고 정부도 있는데, 왜 사회적 기업이 필요할까. 경제성장이 지속 가능하고, 또 모든 사람을 껴안기 위해서다. 소외계층을 껴안지 못하는, 한 공동체로서 결집력이 취약한 경제는 사회 신뢰가 부족해 치안 등 사회체제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선진화를 위한 정책 추진이 어려울 뿐 아니라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대응력도 약해진다. 물론 이러한 소외계층 감싸기와 공동체성 회복은 일차적으로 정부와 NGO들에 기대되는 역할이긴 하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만으로는 사회적 불균형 해소에 너무 긴 시일이 소요되고, 또한 정부 주도만으로 문제 해결을 꾀할 경우 경제활동에 대한 의욕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기업의 참여로 정부와 NGO들의 일을 보완하자는 취지가 공동체 자본주의와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다. 즉, 시장의 힘이 적용되는 범위를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에게까지 확장하자는 얘기다. 이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주체가 사회적 기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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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회적 기업의 하나인 ‘사랑의 줄 잇기 가게’(www.lovingline.org)는 2002년 설날에 서울을 찾은 한 스위스 여인에서 비롯됐다. 추위에 떠는 2000만 북한 주민에게 한 개씩 퀼트를 만들어 보내겠다는 이 여인의 호소는 홍릉 과학연구단지 내 몇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그 감동은 헌 옷을 모아 노원구의 벼룩시장에 나가 팔고 그 수익금을 이웃을 위해 쓰는 사랑의 줄 잇기 착한 가게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착한 가게 운동은 ‘착한 기업 지원네트워크’(www.govingback.kr)로 확산됐다. ‘착한 기업 지원네트워크’는 착한 기업의 창업 및 운영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이러한 기업을 할 사람과 기업을 도와줄 사람들의 풀을 만들며, 창업 자금도 지원해 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기업이 어떻게 착할 수가 있나. 착한 기업이 과연 성공할 수 있나. 사람들에게는 이기심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있다. 근대경제학의 시조 애덤 스미스(그의 도덕감정론)는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도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남도 생각하게 돼 있다고 설파했다. 이런 착한 마음이 사회적 기업의 터전인 것이다.

사회적 기업의 경쟁력 기반은 그 착한 목적과 착한 운영에 있다. 사랑의 줄 잇기 서빙고점의 경우 지난 44개월간 월평균 수익금이 외부의 NGO를 도울 때가 내부 기관을 도울 때보다 11% 높았고, 수혜자가 외국인일 경우가 내국인일 경우보다 46% 높았다. 착한 목적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수익 증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사회적 기업의 이점으로 좋은 직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사회적 기업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그 무엇보다 실제 혜택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일으키고, 그 감동이 더 많은 사람의 동참을 이끌어 내게 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점에 있다.


사회적 기업 키우려면…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본래 목적 왜곡 가능성
‘기업 설립운영’은 민간단체와 협력하게 해야

사회적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치와 역량과 지원의 조화가 필요하다. 현재 사회적 기업과 기업가의 역량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문제다. 그리고 이 지원이 인증제도에 의해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목적의 기업에 편중되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2007년에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하면서 사회적 기업을 “취약계층에 사회적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인증된 기업에 대해서는 경영컨설팅·우선구매·조세감면 등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사회적 기업이 노동시장정책 차원에서 정의되었고, 그만큼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개념 규정은 특정 분야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왜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사회적 기업 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을 확산시키고 그 활동에 일반인의 참여 폭을 더 넓히기 위해서는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기업 육성과 관련해 강조돼야 할 것은 예비 사회적 기업들의 벤처창업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투자지원재단 등에서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인큐베이팅 사업에 대한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

또한 사회적 기업에 대해 대출 및 보증을 제공함에 있어 민간과 파트너십을 이룰 필요가 있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는 예전 벤처기업 지원 때처럼 정부 주도로 서두르기보다는 사회적 기업이 활발히 설립되고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정부가 역량을 기울이는 한편, 그 이외의 분야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자 하는 민간단체들과 협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에서도 결국 관건은 사람과 아이디어와 환경이다. 그중 사람이 그 핵심요소다. 우리나라도 경영대학과 대학원 과정에서의 사회적 기업 프로그램이 더욱 확산돼야 한다. 그리고 아쇼카재단(www.ashoka.org)과 같은 민간재단이 출현해야 한다. 그런 민간재단으로부터 이 착한 기업 지원네트워크와 같은 휴먼뱅크를 구축하고 예비 사회적 기업 및 착한 기업의 창업과 아이디어 발굴 등을 지원하는 역할이 기대된다.

심상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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