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딸과 아들,그리고 災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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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 녀석아,너 공부 못하면 나중에 장가도 못가! 남자가 남아도는데 좋은 학교를 못나와서 직업이 변변찮으면 누가 시집 오려 하겠니.” 얼마전 내 여동생이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들을 닦달하는 말을 듣고 어린애한테 장가니 뭐니 무슨 뚱단지같은 소릴까 했는데,통계청이 발표한.95년 인구추계'를 보니 그게 과장이나 엄포만은 아닌 듯싶다.
신생아중 여자아이 1백명당 남자아이 수를 나타내는 성비(性比)가 현재 1백13.4로 자연스러운 비율인 1백5대 1백7을 크게 앞질러 이들이 결혼 적령기가 될 2010년이면 배우자 구하기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테니 말이다.
이미 여러해 전부터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는 여자짝이 없는 남학생 숫자가 점점 늘어왔다.
이들을.홀아비'라 부른다던가.문제는 그런 불균형이 날로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남아선호사상 속에 저출산이 계속되면서 한국사회의 성비는 80년 1백4.3에서 86년 1백11.8,90년 1백16.8,92년엔 1백13.8로 불균형이 줄곧 심화되는 중이다.
또 첫 아이의 성비는 1백5.9로 정상수준이나 둘째는 1백11.8,셋째가 1백79.4.넷째는 무려 2백13.9나 된다.
이는 첫째는 그냥 낳지만 두번째부터는 원하는 성(性,주로 아들)의 아이를 낳으려고 나름의.조작'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너째쯤 되면 기필코 아들 얻기를 작심해 태아 성감별을한 후에야 출산 여부를 결정짓는 게 보통이다.
그리하여 연간 2만9천여건의 낙태가 행해지고 그 의료비만도 2백94억원에 이른다.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성감별을 해주는 의사는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유교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한국의 아내들은 시댁의.핏줄'을 이을 아들 낳기에 인생을 걸어왔다.시대가 아무리 바뀌었어도 아들 선호는 계층.경제력.교육정도와 상관없는 뿌리깊은 정서다.
그러니 아들 낳는 해괴한 비법들이 난무하고,이른바 여성교양지들도 툭하면.가려낳는 법'을 특집으로 꾸민다.
선택적 낙태는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을 거스름으로써 미래에 큰 재앙을 부를게 틀림없다.
해결책은 뭘까.부계혈통 중심의 호주제도 개선,여성차별 철폐,혼인의 민주화,그리고 무엇보다 그릇된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이런.정답'은 얼마든지 들 수 있다.하나하나가 화급한 과제들이다.
하지만 어느 하나 쉽게 이루기 어려우니….
박금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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