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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정책 데스크의 사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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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작은 소포를 받았습니다. 다운증후군 딸(31)을 어엿한 직장인으로 키운 조복순씨가 보낸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는 선천성 지체 장애인 딸을 30여년간 사회 적응 훈련을 시킨 장한 어머니입니다.

돌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던 의사들을 보기좋게 한 방 먹이면서 인간승리를 일궈냈습니다. 소포에는 그가 육아일기를 모아 최근 펴낸 책 '너무 작아서 아름다운 아이'와 들꽃으로 예쁘게 수놓은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감사의 말씀 꼭 전하고 싶어 이렇게 인사를 올립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남편과 딸의 그림자를 밟으며 생각했었는데요. 이번에 우연히 중앙일보를 접하면서 새삼 기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좋은 어머니가 되도록 계속 애쓰겠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고마워하고 미안해 해야 할 사람은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딸을 키우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할 때 정부와 언론은 대체 무엇을 했나요.

오죽했으면 길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많이 볼 수 없는 상황이 됐겠습니까. 냉소와 무관심의 사회 분위기, 열악한 환경이 장애인을 집안과 병원에만 묶어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복지정책 담당 데스크로서 큰 죄를 지은 듯한 기분입니다.

'무관심 죄'가 가장 큰 듯합니다. 저는 장애인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간혹 '장애인의 인간 승리'를 접하면 감동받다가 이내 잊어버리고 맙니다. 비장애인이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장애인이 144만명이나 되는데도 문제를 제대로 알고 천착하는 전문기자가 한명도 없는 실정입니다.

'시각 미교정 죄'도 있습니다. 장애인을 배려한다지만 접근 시각은 10년 전 그대로입니다. 장애인은 못살고 불쌍하니 동정을 베풀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며칠 전에도 그랬습니다. 후배가 장애인 체육대회를 취재하러 전주에 간다기에 내심 "얼마나 큰 기사가 나올까. 그래 1년에 한번인데…"하고 보냈던 사실을 고백합니다.

'단순 전달죄'도 저질렀습니다. 올 초 정부는 장애인 전용 주차장엔 보행이 불편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좁은 주차 공간을 감안할 때 모든 장애인에게 이런 혜택을 줄 수 없겠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최근 두 팔이 없는 분의 하소연을 방송에서 듣고는 부끄러웠습니다. 세심한 배려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환상 유포죄'도 지었습니다. 정부 대책의 허실을 꼼꼼히 따져 보지 않고 장밋빛 청사진을 여과없이 독자들에게 전했다는 얘기입니다. '장애인 의무 고용제'가 확대되면 취업 문턱이 크게 낮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장은 영 딴판입니다. 검증을 게을리했지요.

정부의 숱한 발표대로 했다면 벌써 장애인이 살 만한 나라가 됐어야 합니다.

조씨는 책에서 딸이 태어난 직후 남편과 밤새도록 부둥켜 안고 운 뒤 "나의 이기심과 자만심에 대한 하늘의 질책으로 느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 순탄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남의 고통을 헤아리고 사랑을 베풀기보다는 오만과 자만으로 가득찬 생활을 해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언제나 내가 소유하고 누리는 평안함을 당연한 것으로 안주했고, 우월감과 자신감으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했었다."

저의 얘기를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약자 편에 서기보다 늘 강자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듭니다. 같은 죄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박의준 정책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