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요의 대변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일본 산요전기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산요는 2002 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에 728억엔의 적자를 봤다가 지난해 28억엔의 흑자를 냈다. 그러나 수치상의 변화만으로는 '산요의 변신'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말로만 그치기 쉬운 '선택과 집중' 전략을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또 세계적 전자업체라는 명성에 매달리지 않고 돈 되는 일이라면 자사 브랜드의 사용을 포기하는 대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도 받아들였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18일자는 이 같은 산요의 변신을 특집기사로 자세하게 보도했다.

◆디지털 가전의 강자로 부상=디지털 카메라를 가장 많이 파는 회사는 어디일까. 소니.캐논.올림푸스.니콘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산요다. 산요의 전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 점유율은 30%에 이른다. 그런데도 산요의 제품이 유명하지 않은 것은 생산량의 95%가 OEM이기 때문이다.

산요의 구와노 유키노리 사장은 "우리는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카메라에 관한 한 니콘이나 올림푸스의 명성을 따라갈 수 없다"며 "그렇다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바로 OEM"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자사 브랜드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최고 사양의 전문가용 제품엔 자사 브랜드를 붙이며, 지난해 11월 출시된 디지털 캠코더 '자크티 C-1'은 독특한 디자인과 우수한 성능으로 생산이 주문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NEC.마쓰시타 등에 밀려 퇴출 직전에 몰렸던 산요의 휴대전화 사업도 최근 극적인 승리를 맛보고 있다. 부호분할 다중접속(CDMA)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늘고 있다. 또 디지털 카메라 기술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카메라폰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밖에도 산요는 세계 휴대전화 배터리의 절반 가량을 공급하고 있으며, 반도체 가운데 40여개 품목에서 세계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과감한 구조조정=많은 일본 기업들이 미국의 거대기업 GE를 벤치마크 하고 있다. GE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살릴 건 확실히 살리고, 안되는 건 과감하게 없앤다'는 것이다. GE를 제대로 따라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산요라는 게 FT의 평가다.

산요는 이익률과 성장 가능성에 따라 각 사업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이 기준에 미달하는 사업 부문은 경쟁사에 파는 등의 극약 처방을 하고 있다. 물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사업에 대해선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예컨대 2차전지 사업이 유망하다는 판단이 서자 일본 배터리의 리튬이온 부문과 도시바의 니켈수소 사업부문을 대폭 확장한 것이다. 결국 세계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부문은 아낌없이 지원하되 그렇지 못한 사업은 과감히 포기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구와노 사장은 "우리는 1등 제품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산요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 최대의 가전회사인 하이얼과 제휴 관계를 맺고 중국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산요의 아킬레스건은 지난해까지 적자를 낸 백색가전 부문. 구와노 사장은 "세탁기.냉장고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백색가전은 여전히 매력적인 사업"이라며 "항공기 엔진을 만드는 GE가 백색가전에서도 수익 내는 것을 보라"고 말했다.

FT는 "산요가 벤치마크로 삼고 있는 GE가 미국 내 백색가전에서만 성과를 이룬 반면 산요는 전 세계 시장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산요가 대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