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건다>창작전업 선언한 중견작가 이윤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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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우리 소설도 이제 경험의 재해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사생활이나 내면의식에서 상상력의 고삐를 풀어내 한없이 넓혀나가야 됩니다.” 작가 이윤기(50.사진)씨가 97년.소설창작전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돼 문단에 나온 이씨는,그러나 지금까지 1백50여권의 번역서를 펴내며 독자와 출판사 양쪽으로부터.가장 믿을만한 번역가'란 성가를올려왔다.
원서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다음 거기에 꼭 맞는 우리의 말을 고르고 골라 번역해내 그런 명성을 얻은 이씨다.이제번역에서 익힌 폭넓은 교양과 사고를 바탕으로 창작전업을 선언하며 우리 소설의 폭을 넓히겠다고 나선 것이다.
“.후일담 소설'이니.소설가 소설'이니 하는 말은 우리 소설에만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소설은 소설가의 경험이나 주변 이야기,혹은 사회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그러나 다시한번 생각해봅시다.우리 몸의 미세단위인 세포 하나하나가 우주를 이루고 있듯우리 개개인의 몸과 마음도 어느 것에만 매일 수 없는 우주 전체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우주까지 확산되고 우리 심혼의 뿌리까지 닿을 수 있는소설을 써나가려 합니다.” 이씨는 줄곧 문화인류학.신화학.종교학에 관심을 가져왔다.그래서 번역도 에코의.장미의 이름'.푸코의 추'를 비롯,엘리아데의.샤머니즘',융의.인간과 상징'등 그방면에 집중됐다.
91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주립대 초빙연구원으로 종교학을 연구하다 지난해 9월 돌아와 연말 장편소설.햇빛과 달빛'을 펴냈다. 두 형제의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빛과 어둠,행복과 고통,소문과 진실등 상반관계에 있는 것들이 같은 가치를 가지고 인간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신화적.우주적 의미를 캐들어간 작품이.햇빛과 달빛'이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사회도 .삼국지'.초한지'.사기열전'등동양 고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렇듯 서구인들도 그리스.로마신화나 성경의 이야기와 수사학에얽매여 있습니다.
이제 동서양의 정신과 문화가 대등하게 만나야할 21세기를 향해 그 신화의 본질과 수사학의 공통점.이질성을 원용하며 오늘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그려나가 보겠습니다.”90년 들면서 틈틈이 발표한 작품들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 씨는 올 정초부터 한국 소설의 또다른 진면목을 보이기 위해 붓끝을 잔뜩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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