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투기 방지’ 명분보다 ‘세금 폭탄’ 현실에 손 들어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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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 합산은 차별”=세대별 합산 과세 규정은 재판관 7명(합헌 2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현행법에 따르면 3억원대의 주택을 가진 사람은 종부세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각각 이런 주택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결혼해 세대를 이루면 6억원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게 돼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된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헌재는 “세대 합산 조항은 헌법이 보장한 혼인과 가족 생활의 보호라는 가치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가족이 있는 사람이 혼인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헌재는 ‘조세 회피를 방지한다’는 세대별 합산 과세 취지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가족들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 조세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조세 회피 방지는 상속세나 증여세 등 다른 수단으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대현·김종대 재판관은 “세대별 부동산 보유를 하나의 과세 단위로 파악하는 정책적 결정”이라며 합헌 의견을 냈다.

◆“1주택 보유자는 감면”=헌재는 집 한 채만 가진 사람들에게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은 과도한 재산권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6억원 이상의 주택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세금을 매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처지에 있는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내 집에서 세들어 산다”거나 “국민을 속 빈 강정으로 만든다”고 주장했었다. 헌재는 “주택 이외에 별다른 재산이나 수입이 없어서 세금을 낼 능력이 낮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감면하거나 조정 장치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헌재는 이 조항을 곧바로 무효로 만드는 단순 ‘위헌 결정’을 하지 않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택했다. 이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 1주택 보유자가 아닌 종부세 납세의무자들에게서도 세금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헌재는 “입법자가 2009년 12월 31일까지 위헌적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때까지 이 조항은 효력을 갖는다. 목영준 재판관은 일부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그는 “1주택 보유자에게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은 조세 정책의 재량으로 볼 수 있지만 부동산 가격 변동 등을 고려해 과세 표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반면 조대현·김종대 재판관은 “고가의 주택에 재산보유세를 부과하는 입법 정책을 위헌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합헌 입장을 밝혔다.

헌재는 두 가지 쟁점에 대해 위헌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도 “종부세의 입법 정당성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종부세가 가진 ▶재산권 침해성 ▶원래 재산을 잠식시키는 문제 ▶이중과세 논란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 등의 쟁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종부세가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승현·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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