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짚기>탈도시 新귀거래사 2년 웃음꽃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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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성공의 정점에 서 있던 대기업 30대 간부가 어느날 사표 한장을 달랑 남긴 채 잠적한다.몇달후 그의 손에 쥐어진 건 두툼한 서류뭉치 대신 끝이 달아 없어진 낫.곡괭이등 농기구.대학교수,공장을 돌리던 사업가,법전과 하루종일 씨름하던 고시생도 조건없이 뒤를 따랐는데….
도심속으로'를 외치며 신발끈을 바짝 동여매던 60~70년대의 열풍후 농촌역류(U턴)현상이 90년대말 전국 대도시를 휩쓸 조짐이다.지난 4년간 서울로 떠난 인구의 3배가 넘는 2천8백여가구가 농촌으로 되돌아 갔다.이중 30대가 39.
7%에 이른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은퇴후 옛 향수를 찾아 내려오는 귀소본능 때문도 아니요,그렇다고 이들을 경제적 재기를 꿈꾸는.오뚝이'군단으로 보기도 어렵다.무연고 타향에 정착하는 비율이 92년 23.9%에서 지난해에는 33.9%로 크게 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 증한다..신귀거래사(歸去來辭)'를 외치는 이들의 공통적인 일성은 바로“자연이 좋아서”다.
전남나주시다시면 두만마을에 사는 宋영건(37)씨.그가 사직서를 던지고 무작정 이곳으로 온 것은 95년 9월이었다.소위.잘나가는'대기업 증권회사 대리였을 때였다.
연봉 약 3천만원,그리고 광주시내 16평 아파트와 두살배기 아들.누가봐도 그는 도시민의 전형이었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주가등락에 늘 촉수를 곤두세우고,하루의 긴장이 풀리는 시간이면 술과 도박을 찾아 스트레스를 쏟아붓던 시절.돈과 명예에 독이 바짝 올라 있었지만 가슴 한구석이 미치도록 허전했다.그때 갑자기 다가선.산과 들'이 있었다.어릴적 잠깐 스쳐 지나간 고향 정경이 눈만 감으면 그를 휘감아왔다.하루아침에 책상이 없어지고거리로 내몰리는 선배들의 초라한 모 습을 보자 그의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宋씨는 술 힘을 빌려 부인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도시에서 자라 손에 흙을 묻혀본 적 없는 초등학교 영양사인 부인 吳수희(36)씨도“우리 한번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쾌히 승낙했다.
문제는 살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다행히 친척에게서 부인의 학교와 가까운데 위치한 빈집 한 채를 소개받았다.직접 공구를 들고 수리한지 한달.4백만원을 들여 변소를 수세식으로 바꾸고 기름 보일러를 들여놨다.울타리를 다듬고 마루에 니스 칠을 끝내자집은 그런대로 운치있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후 1년반이 흘렀다.초(秒)에 명운을 걸던 생활에서 농군으로 변신한 그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우선 흙빛을 닮은 얼굴에 손수 물들인 감색 개량한복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宋씨는 자신에게 달라진 변화를 이렇게 표현한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매사에 여유만만해 졌습니다.”그래서 그의 발걸음도 느릿느릿 우보(牛步)다.
친구들이 생긴 건 또하나의 기쁨이었다.宋씨는 이곳에 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지난해 5월부터 연줄연줄 뭉친 모임이.자연을 사랑하는 귀농회'(가칭)다.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의 7명.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에서 삶의 반절 이상을 보낸 전직 회사원.성직자.학원강사.건축업자 출신들이다.
농사를 전문으로 지어본 적이 없는 순수 아마추어들의 모임이지만 이곳은 각자 익힌 농법과 노하우를 교환하는 소중한 자리다.
회원들은.산림경제'등 농서를 연구한 결과를 아낌없이 내놓는다.
이들의 전문분야는 염색.죽염.전통차.과수(果樹). 효소등 다양하기에 서로 배우는 기쁨이 더할 수밖에 없다.얼마전부터는 집도자체 노하우로 짓기로 하고 우선 통나무집 한채를 올려 세우고 있다. 요즘 부인 吳씨는“이제야 宋대리가 아닌 남편 송영건이 보이네”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두 사람은 여기서 결혼 5년동안 합친 말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하늘.바람.풀과 같은마음으로 일생을 살자는 뜻에서 이곳에 온 첫날밤.소주 한병을 따라놓고 약식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宋씨의 하루는 자연의 리듬에 그대로 맞춰져 있다.해 뜨면 일어나고 어둑어둑해지면 적당한 피로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읽는다.지난해 수익은 1백만원.빌린 밭 5백여평에 검정깨와 고추.콩등을 심어 얻은 금액이다.비록 도시에 있을 때의 한달 월급도 못 되는 액수지만 그 효용가치는 그에게 몇십.몇백배 이상이다. 1년의 계획을 세우기에 분주한 신년초라 宋씨의 펜이 쉴새없이 노트 위를 달린다.거기에 깨알같이 글이 적혀 있다.
.2000년 화순에 정착,통나무집을 짓는다.토종닭.사냥개를 키우고 전통 수종(樹種)도 재배.취미론 천연 염색….' 이들의계획에 올해 네살배기가 된 창환이가 빠질 수 없다.宋씨 부부는창환이에게 제도권 교육을 고집하지 않을 생각이다.본인이 도시로가고 싶으면 뜻대로,그러나 그 전에 생명의 소중함을 알도록 해줘야 한다는 마음만 먹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하기에 오히려 신경이 많이 쓰인다.개 옆에 엎드려 같이 밥을 하아먹는 아들을 봤을 때도,진흙탕 속에 하루종일 뒹굴어 엉망이 된 창환이에게도 이들 부부가 보인 것은.웃음'이었다. 이런 철학을 갖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이 부부.자연을 닮아가는 모습에서 초야시인 윤선도나 무위자연의 삶을 살았던 장자(莊子)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주=이상복.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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