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낚시질’의 씁쓸함 ‘렘브란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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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내년 2월 말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서 열리는 ‘서양미술 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에 나오는 렘브란트(1606∼1669)의 유화는 단 한 점이다. 1650년대 초에 그린 ‘나이든 여인의 초상’(74×63㎝·사진)이다. 차분하게 맞잡은 손, 기품있는 옷차림, 이마에 쏟아지는 빛으로 여인의 원숙미를 아름답게 나타낸 수작이다. 그러나 ‘야경’이나 ‘자화상’ 연작 등 렘브란트의 대표작들과 견주기에는 ‘단 한 점’의 힘이 좀 약하다.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그린 거장 렘브란트와 만났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섭섭한 전시 구성이다.

기획사측은 대신 “흑백 에칭(부식 동판화)이 26점 나오므로 판화에서도 완성도를 이룬 렘브란트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바로크 미술의 거장 렘브란트는 290여 점의 판화를 남겼을 정도로 판화사에서도 높은 봉우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7년 전 이맘때 같은 장소에서 ‘렘브란트 판화전’이 열린 적도 있다. 여러모로 기시감을 주는 렘브란트전인 셈이다.

‘낚시질 제목’과 달리 전시의 핵심은 러시아 국립 푸슈킨 미술관이 소장한 17∼18세기 서유럽 바로크 회화다. 신교와 구교의 대립이 치열했던 이 시기 유럽 화단을 주름잡은 플랑드르를 비롯한 네덜란드·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지역 거장들의 작품 50여점이 나왔다. 브뤼겔의 ‘겨울 스케이트 타기’, 루벤스의 ‘성 도미니크에게 묵주를 주는 마리아’, 반 다이크의 ‘도비니 부인과 포틀랜드 백작 부인’, 푸생의 ‘사티로스와 요정’, 부셰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등이다.

작품의 면면이 뛰어나 주최측의 제목 선정이 더욱 아쉽다. 이벤트 회사가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작품을 들여와 전시장을 대관한 뒤 방학 기간 동안 관객몰이를 해야 수지가 맞는 블록버스터 전시의 한계다.

문제는 관객의 양식은 주최측을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이맘때 예술의전당서 열린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 역시 보기 드문 19세기 러시아 회화를 대거 출품해 놓고는 네 점 뿐인 칸딘스키를 제목에 내세워 구설에 올랐다. 제목이 전시의 진가를 떨어뜨리는 일의 반복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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