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에너지 실용화 때까진 원자력발전이 당분간 대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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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그룹 김영훈(56·사진) 회장은 8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세계에너지협의회(WEC) 집행이사회에서 2013년 WEC 총회를 대구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12일 서울 관훈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머릿속은 벌써 2013년에 맞춰져 있었다. 김 회장은 17∼23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한다. APEC 기후변화 이슈전담회의의 공동의장으로서 에너지와 환경 관련 이슈를 논의할 계획이다.

“대구시 주변에 2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있습니다. 2013년 총회에서 원자력 발전을 미래 에너지의 대안으로 제시할 생각입니다.”

‘에너지 올림픽’으로 불리는 WEC 총회는 3년에 한 번 열린다. 94개 회원국에서 에너지 업계와 정부, 그리고 국제기구의 대표 등 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주일 동안 각종 회의와 전시회가 열린다.

2005년부터 WEC 부회장을 맡아 온 김 회장은 “WEC 내에서는 원자력이 당분간 지구촌 에너지의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대구를 원자력 교육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대구로 유학 온 외국 젊은이들이 원자력 발전을 공부하고, 실제 현장에서 훈련받는 에너지학과를 대구시내 여러 대학에 만들고, 원자력연구소를 대구에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대구처럼 20기의 원전을 가까이 두고 있으면서 주민들의 원전 피해의식이 적은 지역은 흔치 않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국제 경쟁력이 있다. 원자력 발전소 하나를 동남아나 남미에 수출하면 5000억원짜리 배 10척을 수출하는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일본 도시바가 원자력 발전 분야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시가의 두 배인 41억6000만 달러를 주고 2006년 인수한 일을 거론할 때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우리나라가 웨스팅하우스를 샀으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을 거라는 이야기다.

인수합병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더욱 열변을 토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로 떨어진 지금 선진국의 태양광이나 풍력 분야의 선두 업체 인수를 저울질할 때라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업체들의 주가가 유가 하락으로 곤두박질친 때문이란다.

정부가 부르짖는 ‘녹색성장’에 대한 전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전체 에너지 생산량의 몇%로 끌어올릴 것인지를 목표로 삼기보다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녹색산업을 일궈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시적인 보조금 지급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기술개발·교육훈련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WEC 총회의 경제효과는 5000억원쯤 된다고 추산했다.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의 경제효과(5800억원)와 맞먹는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에너지 정상들이 모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만나고 싶은 국가 정상이나 기업체 대표들과 얼굴을 맞대고 에너지 외교를 펼치면 부가가치는 더욱 커진다. 김 회장은 “대구 총회의 조직위원장 자리는 명예직이 아니다. 에너지 전문가이면서 WEC를 잘 알고, 영어에 능숙한 실무형 인사가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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