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얼어붙은 장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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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6강전>
○·장 리 4단(중국) ●·이세돌 9단(한국)

제3보(32∼45)=장리 4단을 상대하는 이세돌 9단의 자세가 구리 9단을 상대하는 것 이상으로 조심스럽다. 장리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런 친구들을 가볍게 보고 초반에 무리한 전투를 벌이다가 사경을 헤맨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더구나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상처는 두 배다.

큰 곳이 널려 있는 지금, 한 집도 안 생기는 흑▲의 차단은 굉장한 투자다. 판의 골격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최선의 수라는 확신이 없다면 두기 힘들다. 32로 뛰면서 중앙을 향한 뜀뛰기 경쟁이 시작됐다. 누가 더 약한가 묻는다면 외려 “흑이 더 약하다”고 답할 수 있다. 백은 A의 한 수로 살지만 흑은 완생까지는 먼 얘기다. 그러나 백도 봉쇄되기는 싫고 그래서 뛰어나가야 한다. 그 틈에 흑은 상변 실리도 챙기고 중앙도 보강하는 두 가지 작업을 수행해 내야 한다.

백36이 흑의 힘든 과업을 적시에 도와준다. 36은 뻣뻣한 수. 상대의 강한 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초보적인 기훈도 외면한 채 정신없이 뛰어나가고 말았다. 장리가 바짝 얼어붙었다는 느낌을 준다(‘참고도’ 1, 3이면 유연했다). 이 틈을 타 이세돌은 37, 39의 적시타를 던지며 스피드를 냈고 41까지 상변 집도 확실하게 굳혔다. 장리는 집이 많아지면 더욱 강해지는 이세돌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일까. 45에서 백은 B와 C 중 어느 쪽인지 어렵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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