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발에 나사못 심은 이규섭 “코트에 선 게 얼마나 감사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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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프로농구 삼성의 장신 포워드 이규섭(31·1m98㎝·사진)은 왼쪽 발목의 흉터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감사 기도를 한다. 선수 생명을 걸었던 대수술에서 승리한 영광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이규섭은 지난 시즌 동부와의 챔피언 결정전 때 발목 통증을 느꼈다. 참고 뛰었다. 한 해 농사의 마지막 수확 자리인 챔프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인대 파열은 선수들에게 흔한 부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진단 결과를 받아든 그는 깜짝 놀랐다. 치료를 너무 지체한 탓에 끊어진 인대의 탄력이 떨어진 것. 인대를 잇기 위해 발뒤꿈치 뼈를 45도 각도로 자른 뒤 깎아냈다. 이어 8㎝ 길이의 나사못으로 잘라낸 뼈를 고정했다. 3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었다.

같은 수술을 받은 선수는 국내에 없었다.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수술이었다. 수술 실패 확률도 높았다. 이규섭은 수술 후 목발을 짚고 다닐 때 한동안 선수 생명이 끝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지냈다. 그는 “수술 2주 후 처음 깁스를 풀고 상태를 확인할 때가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수술 경과는 좋았다. 그는 귀국 후 피눈물 나는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매일 10시간씩 훈련을 했다. 발목의 부담을 덜기 위해 100㎏ 가깝던 체중도 7㎏이나 뺐다. 덕분에 6개월을 예상한 재활이 한 달 가까이 당겨진 지난달 13일 끝났고 팀 훈련에 복귀할 수 있었다.

새 시즌이 시작됐고 코트에 섰지만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감이 줄자 슛을 던지는 횟수도 줄었다. 시간이 약이었다. 출전시간이 늘어나면서 손끝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9일 KTF전은 완전하게 돌아온 그를 위한 경기였다. 그는 33분12초를 뛰었다. 올 시즌 가장 긴 출전시간이었다. 걱정했던 발목 통증도 없었다. 그는 이날 3점슛 두 개 포함, 11점을 넣으며 팀 승리(89-86)에 일조했다. 이규섭은 “이렇게 정상적인 경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최소한 지난 시즌만큼(평균 15점·3리바운드)은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규섭만큼이나 돌아온 그를 반긴 사람은 안준호 삼성 감독이다. 삼성은 지난 시즌 최다 득점팀(54경기 4650점)이었지만, 새 시즌이 시작된 후 최소 득점팀(5경기 387점)으로 추락했다.

그가 돌아온 날 삼성은 처음으로 80점을 넘겼다. 안 감독은 “규섭이가 돌아왔으니 팀의 득점력과 높이가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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