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45. 국보위와 태권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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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80년 5·18 이후 국보위가 출범했다. 사회정화 대상에 태권도계가 포함되는 바람에 고생했다.

숨가쁘게 올림픽 이야기를 해왔다.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 태권도에 얽힌 이야기를 해야겠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가 들어서면서 군부에 의한 사회정화작업이 시작됐다. 태권도계에도 정화 바람이 불었다. 나를 포함해 각 도장의 관장들 모두 사표를 내고 문을 닫으라는 것이었다.

태권도는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어느 분야보다 앞서 개혁을 성공시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을 때였다. 기가 막혔다. “나도 사표를 내야 하느냐”고 물으니 “그러라”고 했다. “세계태권도연맹(WTF) 회장도 내놔야 하느냐”고 물으니 “그것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관장들은 사표뿐 아니라 사무실을 전부 폐쇄하라고 했다. “사표는 몰라도 사무실 폐쇄는 너무 심하다. 무슨 잘못이 있기에 그러느냐”고 항의했다. 겨우 사무실 폐쇄만은 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WTF 회장 사표는 돌아왔다. 당장 집어치우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렇게 하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 참았다. 가끔 호주머니를 털어 관장들을 도와줬지만 한계가 있었다. 관장들의 불평은 대단했고, 그 화살은 모두 나에게 왔다.

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이 된 나는 관장들을 복귀시킬 결심을 했다. 이규호 문교장관을 찾아갔다. 올림픽 유치안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했던 이 장관은 유치 과정에서 나의 도움을 받았고, 올림픽 준비를 하기 위해서도 내가 꼭 필요했다.

나는 떼를 쓰다시피 했다. “나의 동지인 태권도 관장들이 1년 넘게 놀고 있으니 내가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관장들을 복귀시켜 주십시오.” 이 장관은 쾌히 승낙했다. 당장 내 발등의 불도 끄고, 태권도 세계화의 길도 계속 걸을 수 있게 됐다.

83년 또 한 차례 폭풍이 몰려왔다. 하루는 이영호 체육부 장관이 교통회관에서 만나자고 연락해왔다. 그는 연세대 정외과 후배였다. “세계태권도연맹은 지원할 테니 그것만 하고, 국기원 원장과 대한태권도협회장은 내놓으십시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WTF가 대한태권도협회와 국기원에 얹혀 있을 때였다. “WTF만 하느니 다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했더니 “알아서 그만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대통령이 훨씬 더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1월로 예정되었던 태권도협회 대의원 총회도 체육부 장관 지시로 못 열고 있었다.

그때 대통령의 동생인 새마을운동본부 전경환씨가 이 장관을 남서울호텔에서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 태권도를 접수하려는 의도였다. 그냥 당할 수 없어 당시 현홍주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차장을 만났다. 현황보고서를 달라고 해서 갖다 줬다.

대의원 총회를 3월에야 개최할 수 있었고, 그렇게 넘어갔다. 그 후로도 84년까지 계속해서 나를 몰아내기 위한 각종 투서가 쏟아졌고, 조사도 참 자주 받았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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