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오스틴공장서 본 미국 지방행정 서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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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가나 정부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들중 빼놓을 수 없는게 행정의 능률성이다.세계 최강의 국력과 경제를 자랑하는.미국의 오늘'은 바로 행정의 효율성에 힘입은바적지 않다.행정이.장애물'로 작용하는가,아니면 적극적인.안내자'로 기능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장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경쟁력 제고를 외치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과 문제점은 무엇일까.자국민들에겐 물론 외국 기업들에도.열린 행정'을 구현,지역과 국가의 경쟁력을 살찌우는 미국 지방행정 의 현장을 찾아보았다.
[편집자註] 미국 텍사스 오스틴시 트래비스 카운티에 짓고 있는 삼성반도체 현지공장 현장사무실의 한쪽엔 .오스틴시 출장소'가 붙어있다.이름 그대로 오스틴시의 공무원들이 나와 상주하는 시 연락사무소다.이들이 이곳으로 출근한지 벌써 1년이 가까워온다.지난 1월 공장신축을 위해 현장사무실이 만들어진 때부터 줄곧 한국측 관계자들과 얼굴을 맞대왔다.
곁에 붙어서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려 출장소를 세운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삼성반도체를 돕는 .길잡이'다.공장입지를 결정한이래 60% 정도의 공정을 보이는 현재까지 삼성반도체와 오스틴시 사이의 모든 인.허가및 서류작업을 대행하고 조언해왔다.인.
허가에 필요한 서류준비,각종 검사와 평가작업,공청회 개최등 허허벌판에 공장을 세우기 위해 해야할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더구나 삼성으로선 물설고 낯선 외국이다.서류작성과 결재 절차를 아예 모르거나 일의 진행에는 서투를 수밖에 없다.연락사무소의 공무원들은 미국의 행정절차를 몰라 당황하는 삼성반도체를 옆에서하나하나 도와주기 위해 나와있는 사람들이다.언제,어떻게,어떤 서류와 절차가 필요한지 미리 알려줬다.서류를 들고 본청의 이 부서,저 사무실로 뛰 어다닌 것도 삼성측이 아니다.연락사무소 파견 공무원이 .심부름 대행업자'처럼 해당부서를 직접 찾아다니며 필요한 내부결재 절차를 밟아나갔다.
공무원의 현장파견과 지원활동은 각 주나 시.군등 지방정부들 사이에 보편화된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라는 행정지원 제도의 일환이다.앉아서 지시나 퇴짜를 놓는 .거드름 행정'이 아니라 아예 기업이 고객을 대하듯 직접 찾아다 니며 발벗고뛰어주는 .심부름 행정'인 것이다.
오스틴공장은 투자총액 13억달러(약 1조7백억원)규모로 부지결정에서 필요한 인.허가 과정을 거쳐 착공에 이르기까지 2개월반이 소요됐다.공장부지로의 전용,도시편입,토질분석,도시계획,환경영향평가,교통영향평가등 필요한 모든 과정을 .규 정대로' 거친 결과다.
공장건설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똑같은 규모로 한국에공장을 짓는다고 가정할때 지목변경등 사전 정지절차에서 인.허가까지 최소 3년이상 걸릴 것이라고 장담한다.
물론 현지주민들에 의한 집단민원등과 같은 부작용없이 매끄럽게일이 진행됐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3년을 2개월반으로 줄일 수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로널드 레널즈 오스틴시 운영위원은 “권한위임과 간소화된 행정절차,잘 정비된 행정시스 템,행정의 기업마인드화”등을 꼽았다.
예를들어 오스틴공장의 인.허가및 건설에 따른 제반문제에 대한오스틴시의 실무총책임자는 로널드 메나드 도시계획.개발담당 심의관이다.우리로 치면 과장과 국장의 중간정도급 관리자가 1조원이넘는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행정결정권과 감독권을 갖는다.이 프로젝트에서 상급 행정조직,연방정부가 관여하는 부문은 환경문제 하나.주정부도 대기오염 문제와 도로개설에만 .개입'했다.인.허가등 행정적인 결정과 사후관리는 90% 이상 오스틴 시정부가 도맡아 처리한다.따라서 인.허가의 결재라인이 지극히 짧다.오스틴공장에 따르면 인.허가를 거쳐 주건물 상량이 끝나 내부설비에 들어간 지금까지 관(官)으로부터 받아야 했던 .날인(捺印)'은메나드 심의관의 서명 두개가 전부다.비슷한 규모로 한국에서 공장을 세우려면 인. 허가과정에서 80여개의 날인이 필요한 것과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 공장 건설을 위해 환경영향평가등 전문가에게 의뢰해 실행된외부평가는 모두 18건이다.공청회도 4건이나 치렀다.그러나 시당국은 이 모든 절차를 동시에 진행시켰다.특히 민간전문기관의 평가들을 행정당국이 그대로 신용,모두 수용하는 풍토도 시간절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이처럼 간소화.전문화된 행정체계에 따라공장건설에 관여한 인력도 몇명에 불과했다.기술적인 문제를 다루는 엔지니어들을 제외하고 인.허가등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뛰어다닌 삼성측 전담인원은 과장급 을 팀장으로 한 3명이다.오스틴시측에서도 2~3명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같이 눈에 드러나는 차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소비자'편에 서서 일을 진행시키려는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다. 한국측 관계자들이 가장 인상깊게 생각하는 것은 오스틴시 공무원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삼성에 좋은 것은 우리에게도 좋다”는 말이다.“우리 지역에 진출하는 기업들의 정착이 늦어지거나 실패한다면 앞으로 다른 기업들을 어떻게 유치할 수 있겠는가.”스스로를 오스틴 CEO(최고 경영자)로 즐겨부르는 브루스 토드 시장의 말이나 태도에서도 공무원 .티'는 전혀 찾아볼 수없다. [오스틴=김용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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