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사람] 30여년째 철학 강의하는 김흥호 목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선생은 무슨 선생…. 사람은 죽을 때까지 모두 학생인 거지."

30여년째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두시간 동안 이화여대 부속교회 세미나실에서 동서양 철학과 성경을 강의하고 있는 김흥호(金興浩.85)목사.

1955년부터 84년까지 이대 기독교학과 교수와 교목(校牧)을 지낸 그의 강의엔 매번 대학교수.사업가 등 각계 인사 100여명이 모여든다.

이런 연유로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평소 공부한 걸 발표하는 자리일 뿐 누굴 가르치는 게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기독교는 물론 유.불.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해박함은 듣는 이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한다. '주역강해''양명학공부'를 비롯해 최근 출간된 '서양철학 우리 심성으로 읽기1''법화경 강해'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이 강의 내용을 녹음해 풀어쓴 책이 벌써 22권에 달한다. 앞으로 18권을 더 내놔 40권으로 전집을 만든다는 게 제자들의 계획이다.

이처럼 목사이면서도 동양 삼교를 꿰뚫고, 동서양 철학에 막힘이 없다 보니 그는 '도인(道人)''철인(哲人)'으로도 불린다. 이런 말들에 대해 金목사는 "'나를 알자'는 게 내 메시지인데 뿌리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자기를 알 수 있겠느냐"며 "퇴계와 율곡, 원효와 의상을 바로 알려니 공자와 주자, 화엄경과 법화경도 공부해야 했다"고 했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개인의 깨달음에 보탬을 줘야지 '예수 믿고 천당 가자'는 식의 기복(祈福) 신앙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황해도 서흥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양고보와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광복 후 고향에서 용강중학교를 세우고 교장을 지내다 28세 때 월남해 위당 정인보 선생의 권유로 국학대 철학교수가 됐다. 1년 뒤엔 다석 유영모 선생을 만나 6년간 동양사상 등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스승(다석)께선 서울YMCA에서 45년간 매주 강의를 하셨어요. 또한 매일 저녁 한끼를 먹고, 밤엔 잠을 자고, 아침엔 깊이 생각하고, 낮엔 열심히 일하며 하루를 '영원'처럼 사셨지요. " 金목사도 35세 때부터 저녁 한끼 만을 먹고, 일요 강의를 하며 스승과 '닮은꼴'로 살고 있다.

"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金목사는 "평양고보 시절 만난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 민족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해 내 민족의식을 북돋웠고, 나를 이화여대로 이끈 김활란 총장은 '삯꾼이 되지 말고 일꾼이 되시오'라는 말로 내가 평생 돈에 연연치 않고 선생 노릇을 하게 했다"고 말했다.

"천명(天命)이 다할 때까지 민족을 일깨우고 싶다"는 金목사는 "그래서 노벨상 받은 이도 많이 나오고, 한국이 다음 세기에 세계 문화를 주도하는 일류국가가 되기를 꿈꾼다"고 했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