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탄수화물' 성인병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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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많은 집의 탈 없이 자라는 둘째'에 흔히 비유되는 영양소가 있다. 두뇌와 근육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당질)이다. 단백질.비타민.미네랄은 영양제를 복용해서라도 부족하지 않게 섭취하려고 애쓴다. 지방은 악명이라도 높다.

그러나 영양의 '맏형'인 탄수화물은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한다. 홀대해도 될 만큼 탄수화물은 우리 건강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존재일까? '탄수화물이 건강의 친구인지, 적인지'에 대한 집중 토론이 14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한국영양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있었다.

◇고탄수화물 식사의 허실=잘못된 탄수화물 섭취는 '죽음의 4중주'(고혈압.복부 비만.고지혈증.인슐린 저항성)를 동시에 '연주하는' 대사증후군의 급증을 부른다.

요즘 육류 소비가 늘기는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高)탄수화물 식사를 한다. 이는 총 열량의 65%를 탄수화물, 20%를 지방에서 얻는 식사를 가리킨다. 전북대병원 내과 박태선 교수는 "고탄수화물 식사를 하는 한국.중국.일본의 심장병 유병률이 서구보다 훨씬 낮다"고 말했다. 총 열량의 30% 이상을 지방에서 얻는 서양인의 기준에서 보면 본받을 만한 비율이다.

그런데도 왜 국내의 당뇨병.심장병 환자 발생률은 해마다 늘어날까. 전문가들은 고탄수화물 식사의 건강 효과가 마르고 활동적인 사람에게 두드러진 반면 비만이거나 운동이 부족한 사람에겐 오히려 불리하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저탄수화물 식사(탄수화물 하루 섭취량 50g 이하)를 하면 지방이 완전 분해되지 않아 혈액.조직에 케톤이 쌓인다. 이러한 케톤증은 황제 다이어트 등 극단적인 고지방.저탄수화물 식사를 하는 사람이 걸리기 쉽다. 저탄수화물 식사는 또 근육 감소.심장병.신장과 뼈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식품 선택기준 달라졌다=건강에 이로운 탄수화물과 해로운 탄수화물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학자들은 복합 탄수화물이 단순 탄수화물보다 건강에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복합 탄수화물은 분자들이 복합 사슬로 이뤄진 것들로 몸 안에서 서서히 소화.흡수된다. 반면 단순 탄수화물은 먹자마자 열량을 바로 낸다. 혈당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과거엔 설탕.케이크.과자.과일.청량음료 등 단 음식에 많이 든 단순 탄수화물을 기피했다. 대신 밥.국수.빵.고구마 등에 든 복합 탄수화물을 권장했다.

그러나 최근 혈당지수(glycemic index)와 혈당부하(glycemic load)가 식품에 적용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혈당지수란 흰빵을 기준(100)으로, 어떤 식품이 혈당을 얼마나 빨리, 많이 올리느냐를 나타내는 수치다.

예컨대 감자는 사과보다 혈당을 더 빨리, 빠르게 올리므로 혈당지수(85)가 사과(40)보다 높다. 혈당지수가 높으면 혈당을 내리는 것도 빨라 공복감이 금세 온다. 또 복합 탄수화물인 콘 플레이크의 혈당지수는 114인데 단순 탄수화물인 아이스크림은 61, 설탕은 58에 불과하다. 이 개념이 도입되면서 '복합 탄수화물은 친구, 단순 탄수화물은 적'이란 등식이 깨졌다.

혈당부하란 혈당지수에 평소 해당 식품을 얼마나 많이 먹느냐를 반영한 값이다. 혈당지수(68이면 0.68로 환산)에 해당 식품을 1회에 얼마나 먹는지 그 양(g)을 곱해 산출한다. 혈당지수든, 혈당부하든 낮은 수치가 건강에 좋다.

당근을 예로 들어보자. 당근은 비타민.미네랄.섬유소.항산화 물질 등 건강 성분이 풍부한 식품. 당근은 과거엔 혈당지수가 높은(92) 식품으로 낙인 찍혀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다. 그러나 당근은 한번에 많이 먹지 않기 때문에 혈당부하(5)가 낮다. 적당히 먹으면 혈당지수와 관계없이 몸에 유익하다는 것.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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