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연의 IN-CAR 문명] ‘난폭한’ 오토바이 순하게 만들려면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1면

대한민국 도로에서 가장 핍박(?)받고 있는 딱한 존재를 꼽으라면 단연 오토바이가 떠오릅니다. 우선 법적으로 따져봐도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과 처지가 비슷합니다. 125㏄ 이하는 ‘원동기 장치 자전거’이고, 그 이상은 ‘이륜차’로 구분됩니다. 자동차세·등록세·취득세를 모두 내는 125㏄ 이상 ‘이륜차’는 엄연한 차인데도 자동차 전용도로 진입이 금지돼 있으니 태생적 한이 많을 수밖에요.

게다가 오토바이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어떻습니까? 중국집은 맛보다는 신속배달로 승부하고, 배달사원은 목숨을 걸고 도로를 달립니다. 피자집 역시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 못하면 전부 공짜’라는 자극적인 광고를 내걸고, 빨리 배달하기 위해 죽음의 레이스를 펼칩니다. 그뿐입니까.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더니, 내가 주문한 퀵서비스는 빨라야 하고, 도로에서 만난 다른 퀵서비스 오토바이는 ‘무법자’라고 싸잡아 말합니다.

오토바이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죠. 자동차는 정차해 있을 때 비록 심리적으로는 시간에 쫓겨 불안할지언정 육체적으로는 편안한 상태입니다. 브레이크만 밟고 있으면 되기 때문이죠. 또 자동차는 짐을 아무리 많이 싣고 있어도 운전자가 버거울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륜차는 정지해 있을 때 가장 괴롭답니다. 두 발로 이륜차와 그 위에 실린 짐의 무게까지 운전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합니다. 게다가 눈비가 오면 고스란히 맞아야 합니다. 히터도, 에어컨디셔너도 없습니다. 당연히 ‘도로 위의 약자’죠.

비가 많이 왔던 여름 어느 날, 노면이 미끄러운 지하철 공사구간에서 갑자기 쓰러진 배달원을 도와줬습니다. 그분의 말이 오토바이 제동이 잘 안 되는데 마침 앞에 선 차가 비싼 외제차여서 할 수 없이 충돌을 피하려 넘어졌다는 것이었죠. 그냥 넘기기엔 씁쓸한 이야기였습니다.

느닷없이 웬 오토바이 동정론이냐 하시겠지만 주위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일부 폭주족 말고 어려운 상황에서 오토바이로 생계를 꾸려 가는 이웃이 정말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오토바이 안전을 위해 뭔가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무엇보다 오토바이 안전을 위해 ‘주간점등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낮시간에 오토바이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운전자의 사이드미러에 잘 포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간점등은 도로의 약자인 오토바이가 자신의 존재를 자동차 운전자에게 표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 홍익대 앞이나 신촌 부근 밤길을 다니다 보면 요란한 LED 조명으로 장식하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자주 목격합니다. 멋을 내려 그런 거냐고 했더니, 옆 차에게 존재를 알려 사고를 당하지 않으려는 고육책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오토바이마다 후미등 사이즈가 제각각이고 시인성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토바이 주간점등제와 후미등 규격을 법제화하면 어떨까요? 자동차를 사랑하지만, 오토바이를 통한 서비스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으로서 제안해 봅니다.

남궁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