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나다>보디빌더 최초의 연금수혜 예정자 한동기씨

“이거 창피해서 못벗겠어요.” 지난달 요르단에서 열린 미스터유니버스대회 70㎏급에서 우승한 한동기(39)씨는 세계에서 가장 우람한 근육으로 공인받은 몸을 부끄러워 했다.지난달 세계대회가 끝난뒤 며칠 쉬는 동안에 근육이.아이스크림 녹듯'녹았기 때문이란다.
평생 가꾼 근육이 녹는데는 1주일도 안걸린다고 한다.근육이 녹는다는 얘기는 조각칼로 깎은듯한 근육의 날카로운 질감(cutting)이 흐려지면서 두루뭉실해져 백두장사급 씨름선수들의 그것같이 된다는 말이다.
보디빌더들의 고품질.민감성 근육은 고행(苦行)의 산물이다.마치 고행을 떠나는 수도승처럼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음식을 절제하고,깨어있는 시간 내내 쇳덩어리(아령과 바벨등)라는 화두를 붙잡고 스스로에게 물어야한다..아름다운 몸은 어떠 해야 하는가'라고. “이젠 친구도 없어요.그 많던 친구들 누구도 저를 부르지 않습니다.제가 술을 먹습니까,담배를 피웁니까,그렇다고 식당음식을 먹습니까.망년회에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구경만 하고 앉아있으니 당연하지요.” 결국 그에게서.근육'은 속세의 모 든것을 자진해 포기하고 받들어야할 신(神)과 같은 셈이다.
근육을 모시는 고행의 시작은 쇳덩어리와의 싸움.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울 송파경찰서 옆에 있는 홍영표 보디빌딩 연구소로 출근한다.국가대표급 선수들만 이용하는 연구소 체육관에서 하루 종일 쇳덩어리와 싸운뒤 저녁때 귀가,밤에는 혼 자 음악을 들으면서 포즈를 구상한다.아내와 딸은 같은 집에 살지만 이방인과 같다.
더 큰 싸움은 다이어트다.보디빌더는 소금기를 섭취하지 않는다.염분은 몸속에서 수분을 빨아들여 근육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지방도 안된다.소금기없는 맨밥과 삶은 감자,기름기없는 닭 가슴살,계란 흰자(노른자는 기름기가 많아 못먹는다) ,우유와 채소,그리고 편식에 따른 영양결핍을 보완해줄 건강보충제(비타민제등 알약)를 먹는다.다이어트를 위한 먹을거리는 본인이 직접 만들며,어딜 가든 하루 여섯끼(6천 칼로리)의 도시락을 지참해야한다. 1년중 3개월은 지방빼기,다시 3개월은 근육붙이기,시합직전 2개월은 근육 다듬기,그리고 시합 직후 3~4개월은 휴식기간.1년에 한번,시합직후에는 가장 먹고싶은 김치라면과 떡볶기를 맛볼 수도 있지만 그나마 마음껏 먹지는 못한다.사 실 그도처음에는 남들처럼.힘 좀 쓰려고'보디빌딩을 시작했다.전남나주 영산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무교동에서 꽤 큰 술집을 하던 형님을 돕기위해 상경한게 76년.그는 스스로.포악'하다고 표현할정도의 급한 성격을 만족시켜 줄 수 있 는 완력을 기르기 위해80년 한국체육관을 찾았다.그리고 그 길로 보디빌딩에 빠져 유흥가를 뒤로 하고 체육관에서 먹고자기 시작했다.
“근육이 붙기전 처음 몇달은 힘들고 지루하죠.하지만 일단 근육이 만들어지는 것이 보이면 그 즐거움은 말로 설명이 안됩니다.뭣에든 한번쯤 미쳐본 사람만 이해할 겁니다.좋게 말해 종교고,나쁘게 말해 마약같은 거죠.” 그렇게 미쳤기에.룸살롱 사장'이길 포기하고 배고픈 고행의 길을 떠난지 16년,몸과 함께 성격이 바뀌었다.몸뚱이는 그의 신이기에 몸이 다칠 수 있는 곳에가지 않고,몸에 해로운 일을 하지 않다보니 정서마저 순화된 것이다.어디 가서 힘쓸 일도,그럴 마음도 없어졌다.
생활도 나아졌다.처음에는 보조식품인 약값이 없어 형님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하지만 지금은 한화제약 과장으로 취직돼 고정적으로 월급과 훈련비를 받고,지방대회등에 초청받아 출연비조로 받는 돈까지 합하면 월2백50여만원의 수입은 된다 .이런 여유는 그가 88년 이후 세계대회에 여덟번 입상하고 그중에 두번은금메달을 받은 덕분이다.그의 기록은 곧 한국 보디빌딩의 기록이다.덕분에 그는 보디빌더로는 최초로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연금을 받게될 예정이다.
“연금이란게 나랏돈 아닙니까.보디빌딩하는 사람도 나라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얘기니까 정말 기분 좋습니다.” 보디빌더로서 근육이 녹아내리는 것은 두렵고 부끄럽지만.보디빌딩이 직업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아도 될 시대'를 열었다는 자부심에힘이 솟는다고 한다.
〈오병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