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짚기>족집게 강사 조진만의 공교육에 계란 던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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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열린 교육'은 우리 교육계에 던져진 가장 큰 화두다.가령 초등학교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수업을 진행하도록 유도하거나 교실을 떠나 농장에서 채소를 가꾸도록 하는게 그 초보단계쯤 된다.그러나 이런 시도가 대학진학을 지상과제로 삼는 고등학교로 넘어갈라치면 사정은 금방 달라진다.“왜 하필이면 우리 아이냐”는 부모들의 반발에 부닥치기 때문이다.그래서 열린 교육은.언젠가는 해야 할,그러나 아직은 멀고 먼 얘기'.
이런 우리네 풍토에서 입시학원 강사가 고3학생들을 극 장으로몰고 다니고 음란물을 보여주며 수업을 진행한다면 어떨까?무슨 황당한 얘기냐는 핀잔이 금방 쏟아질게 뻔하다.하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올초 대학을 졸업한 27세의 논술강사 조진만(趙辰晩).그는 대입전쟁의 전초기지인 입시학원에 서 파격적인 수업으로 기성교육에 도전장을 냈다.잠깐 그의 수업을 들춰보자.
지난 2월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오후 강남 R극장 앞에 고교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이들은 조씨에게.민주주의와 노동'수업을 듣기 위해 극장을 찾은 것이다.조씨는 이렇게 모인 1백30여명을 이끌고.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관람했다.그 리곤 학원으로 돌아와 22세의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70년11월 이후의 신문기사자료와 관련서적들을 읽게 한 뒤 작문을 시켰다.글을 써내려가는 학생들의 표정이 엄숙했다.
지난 4월에는 반라(半裸)의 외국여성이 강의실에 초청됐다.인터넷을 주제로 진행한 이날 수업에 조씨가 직접 노트북 컴퓨터를대형TV와 연결시킨 뒤 음란물 사이트등을 탐험했던 것.학생들은직접 인터넷에 들어가 영화제의 주연배우 인기투 표에 한표를 던지는 등 새로운 경험 속에서.네티즌'.인터넷과 음란물'.전자민주주의'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다.
학생들은 그렇다 치고 학부모의 반응이 폭발적이라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셈이다.올초부터 딸에게 조씨의 강의를 듣게한 김정진(44.여.서울강남구압구정동)씨의 경우“글쓰기에 흥미를 잃었던 아이가 조선생의 강의를 듣고서부터는 논술에 재 미를 붙인 것은 물론 다른 과목까지도 흥미를 되찾는 파급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 그가 올초.족집게 다.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논리적 사고훈련'이며,.글쓰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중앙일보 김창호 전문기자는 특히“인문사회과학적 지식에 있어선 가르치는 사람이라 해도 결코 짧은 시간에 습득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이런 기준으로 지난 2월 한양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조씨의 경력만을 거론하면 부족한 구석이 많아 보인다.
그런 그가 올초.족집게 강사'돌풍을 일으키며 일약 논술계의 스타로 발돋움했다.지난해초 강남 신한학원에서 2개반을 맡아 처음.논술무대'에 섰던 그는 6개월이 채 안돼 8개반을 가르치면서 학원내 최다수업 논술강사가 됐다.그리고 지금은 신한학원.평촌서울학원등 35개 강좌를 맡아 매일 밤11시까지.강의 강행군'을 계속중이다.
그를 일약 유명 논술강사 반열로 끌어올린 것은 지난해 입시에서 연세대.한양대등 논술문제 7개를 적중시켰던 사실이다.특히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그림을 놓고.현상과 본질'의 관계를 논하도록 한 한양대 문제의 경우 그림까지 똑같아 유출의 혹마저 제기됐다.당시 그는 한양대 국문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사정은 더했다.
그러나 그의 꾸준한 노력을 관찰하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그의 강의는 1주일에 5일.그중 이틀은 직접 강의하지만 나머지 사흘은 대학원생이나 대학강사등을 초청해 진행한다.자신이 미흡하다고 생각한 학문적 지식을 다양한 전공자들의 손을 빌려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논리적 사고력 배양을 위해선 위에서 언급한 독특한 수업방식을동원한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디오 수업.영화나 과학 다큐멘터리등을 담은 비디오에 자신이 직접 캠코더로 찍은 화면등을 합성해 보여주면서 각종 이슈에 대한 학생들 의견을 적도록 한다.광고의 문구들을 분석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훈련,유행가 가사를 통해 시의 이론을 적용시켜보는 시도등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다양한 사고를 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말하자면 그는.논술강사'라기보다 .논술감독'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틀에 박인 학교수업에 지쳐있던 학생들에게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간다.지난 2월부터 수업을 들은 현대고등학교 3학년 박지혜(17)양은“.이렇게도 공부를 하는구나'하는 묘한 즐거움을 이해할 어른들이 과연 몇명 있을까 요.근본적으로다른 조선생님의 강의를.족집게'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일침을 놓는다.
독특한 수업진행을 위해 조씨가 흘리는 땀은 사실 상상을 초월한다.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수입의 대부분을 교육을 위해 재투자하기에 망설임이 없다.10여명의 직원을 두고 각 대학의 교양국어 내용과 교수들의 특성,대학별 기출문제를 분석한다.학원강의실마다 자신의 돈을 들여 50인치 대형TV를 설치하는가 하면 학습용 비디오테이프 제작을 위한 기기 구입에도 적극적이다.
결국 그는 강의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새로운 교육방법 개발에 쏟고 있는 셈이다.이 모든 노 력이 결국 에듀테이너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는게 그의 확신이기도 하다.
그의 꿈을 한껏 펴기에 학원이란 공간은 작아보인다.그래서인지그는 내년부터 학원수업을 줄여나갈 계획이다.대신 매체를 통한 에듀테인먼트의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설 작정이다.거대한 공교육이엄두도 못내 방치하고 있는 화두를 작은 한 개 인이 붙들어 풀겠다고 한다면….
그의 마지막 말이 문득 가슴을 때린다.“저는 한번도 신명나게공부해본 기억이 없습니다.제가 공부하며 느껴야 했던 지긋지긋한기억들을 우리 후배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렵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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