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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86> 혁명시대 부녀운동의 영수 허샹닝<上>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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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1916년 4월 9일 도쿄에서 쑨원(앞줄 가운데)·쑹칭링(쑨원 왼쪽) 부부와 함께한 허샹닝(쑨원 오른쪽). 쑨원 앞에 앉은 소년이 허샹닝의 아들 랴오청즈(廖承志). 김명호 제공


쑨원(孫文)의 오른팔이었던 제1세대 혁명가 랴오중카이(廖仲愷: 1877∼1925)는 샌프란시스코의 부유한 화교 가정 출신이었다. 부친은 광둥(廣東) 커자(客家) 출신으로 두들겨 패며 고전을 외우게 하는 중국식 전통교육의 신봉자였다.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 마음에 드는 선생이 있을 리 없었다. 손수 아들을 교육시켰다.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랴오의 머릿속에는 동서의 고전들이 고스란히 들어앉았다.

랴오중카이의 부친은 전족(纏足)이야말로 중국인의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임종 시 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너는 전족한 여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 그랬다간 큰일 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발이 큰 여자와 결혼해라. 그것도 크면 클수록 좋다.” 전통과 현대가 뒤엉킨 사람다운 유언이었다.

커자 여자들은 꼭두새벽부터 밖에 나가 일하고 집안에 들어오면 주방으로 직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경작에 능했고 장작도 여자들이 팼다.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전족을 안 했기 때문이다. 커자 여인과 결혼한 남자들을 속으로 부러워하는 한족(漢族) 남자가 많았지만 부인이 전족을 해야 대접받고 행세하는 시대였다.

병든 모친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온 랴오중카이는 홍콩의 숙부집에 살며 학업을 계속했다. 랴오가 20세가 되자 숙부는 조카며느릿감을 구하러 다녔다. 상류사회 집안에는 전족을 하지 않은 신부감이 전무했다.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랴오중카이는 아버지의 유언만을 고집했다. 숙질 간에 의절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여러번 있었다.

허샹닝(何香凝: 1878∼1972)의 부친은 홍콩의 거상이며 땅부자였다. 백만장자였지만 문화가 없었다. 상류사회 진입에 문제가 있었다. 자녀들의 혼인을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딸들에게 상류사회의 상징인 전족을 시켰다. 막내딸 샹닝도 예외일 수 없었다. 여섯 번째 생일날 발을 더운 물에 불린 후 천으로 꽁꽁 동여맨 다음 바느질을 해버렸다. 전족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허샹닝은 미리 숨겨 놓았던 가위로 발을 동여맨 천을 잘라 버렸다. 놀란 부모는 다시 동여매고 대대적인 가위 수색을 벌였다. 어린 딸이 제단 밑에 숨겨놓은 것을 알 길이 없었다. 억지로 동여매고 풀기를 20여 차례, 결국 부모들은 포기했다. 제대로 된 집안에 출가하기는 틀린 막내딸의 앞날을 걱정하며 한숨만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

랴오중카이의 숙부에게 허씨 집안 아홉째 딸 샹닝이 천족(天足·원래 모습대로의 발)이라고 귀띔해 준 사람이 있었다. 발도 굉장히 크다고 했다. 숙부는 중간에 사람을 넣었다. 허씨 집안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양가 모두 결혼을 서둘렀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사주(四柱)도 교환하지 않았다. 순전히 발 때문에 성사된 결혼이었다.

허샹닝은 결혼 5년 후인 1902년 가을 패물과 장신구를 처분해 남편을 일본에 유학 보냈다. 허샹닝도 같은 해 겨울 도일해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도쿄(東京)에서 쑨원을 만나자 혁명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다. 랴오중카이를 쑨원에게 데리고 갔다. 일본에 유학 중인 중국 학생 가운데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물색해 결사를 조직하는 일을 도맡아 했고 국민당(國民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동맹회(同盟會)의 설립에 큰 업적을 남겼다. 혁명이론의 선전과 무장폭동의 중심에는 항상 이들 부부가 있었다.

랴오중카이가 무장세력을 조직하고 러시아 점령지역이나 다름없었던 옌지(延吉)의 중국 귀속을 교섭하기 위해 세 차례 동북 지방으로 잠입할 때도 “조국의 원수들을 내쫓지 않고는 죽을 수도 없는 몸, 헤어지며 눈물조차 흘릴 수 없네. 머리 날아가는 것을 두려워 말고, 역사에 이름 남김을 쟁취하라”는 송별시를 지어 남편을 격려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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