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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빚 40대는 대출 갈아타고 지름신 골드미스는 소비 수술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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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빚 때문에 시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채무를 줄여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고, 사채까지 손대는 경우도 많다. 빚을 내서 투자하고 씀씀이를 키웠던 레버리지의 거품은 꺼졌다. 이젠 생존을 위해 빚을 줄여야 하는 디레버리지(de-leverage)의 시대다. 빚을 줄이기 위한 노하우를 전문가들에게서 들어봤다. 다음은 중앙SUNDAY의 기사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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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닥치면 투자 보따리를 가볍게 하는 게 최고다. 빚부터 줄여야 한다. 지금이 그렇다. 가계자산의 ‘디레버리지(De-leverage·차입축소)’시대가 왔다. 빚덩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씀씀이를 키우며, 마음껏 투자했던 레버리지 잔치판을 엎을 때가 됐다. 빚 관리의 달인들로부터 대응법을 들어봤다.

숨통 조여오는 빚덩이

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동양타워빌딩 7층에 있는 신용회복위원회 교육관. 오전 9시30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았다. 수천만원대의 은행 빚이며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해 신용위에 채무조정 신청을 했던 이들이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교육생들의 얼굴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희망의 막이 오르다’라는 제목의 강의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메모하는 소리가 들렸다. 50여 명의 교육생 중에는 40~50대 남자들이 가장 많았다. 군데군데 아이를 데리고 온 주부, 20대 젊은이도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노숙자 행색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었다.

팍팍해진 가계 살림을 유혹하는 전봇대의 대출광고들. 빚관리에 바싹 정신차리지 않으면 돌려막기의 악순환에 빠져 사채와 채무불이행 늪에 빠질 수 있다.

기자는 ‘카드대란’ 이후였던 3년 전 같은 장소에서 신용불량자를 취재했었다. 그때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육관의 윤여욱 팀장은 “요즘 억대 이상의 빚을 진 사람은 개인회생이나 파산 쪽으로 가고 이곳은 서민층이 많다”며 “금융위기와 불황의 후폭풍이 아직 뚜렷이 감지되진 않지만 경험상 5~6개월 뒤엔 이곳을 찾는 사람이 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용위에 따르면 올해 빚에 허덕이다 신용지원을 신청한 사람은 3분기까지 5만8000여 명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6만3000여 명)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비단 서민뿐이 아니다. 얼마 전 만난 대기업의 박모(36) 과장은 “요즘 하루가 갈수록 초조하다”고 토로했다. 빚 문제가 눈앞에 닥쳐 왔기 때문이다. ‘주가 조정은 잠깐일거야. 다시 오르겠지….’ 이렇게 막연한 기대로 연초 국내외 펀드에 맡긴 2000만원은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대출금리가 슬금슬금 오르는 상황에서 지난해 여름 주택담보대출로 빌린 1억원의 이자를 볼 때마다 덜컥 겁부터 난다. 연초엔 성과급도 탔지만 앞뒤 재지 않고 평소처럼 유지했던 생활비·유흥비로 마이너스 통장은 다시 한도가 찼고, 최근엔 현금서비스까지 손댈 정도다. 내년에 감봉과 인력감축이 횡행할 것이란 흉흉한 소문을 접할 때마다 소홀했던 빚 관리를 후회한다.

통계는 따로 없지만 비슷한 고충을 털어 놓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거품기에 잠복했던 ‘빚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신용위의 유재철 수석연구원은 “지금은 자산관리 대신 부채관리에 집중해야 패가망신을 막는다”고 말했다. 그는 5년간 신용위에서 극한 상황에 이른 채무자들을 만나 고민을 듣고 해법을 제시하면서 누구보다 예민하게 빚 문제의 흐름을 주시해 왔다.

실제로 이런 위기감은 통계로도 한꺼풀씩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며칠 전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이 떨어졌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금리가 오르는 와중에 빚이 소득이나 금융자산보다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애물단지 주범인 주택담보대출만 해도 원리금상환부담률(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말의 15%에서 지난 6월엔 20%로 뛰었다.<그래픽 참조>

유 수석은 “매달 갚는 빚 원리금이 소득의 25%를 넘으면 적신호가 켜졌다고 봐야 한다. 40%를 넘으면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한은 집계에 따르면 이미 빨간선으로 몸이 넘어 왔다는 소리다. 빚 문제는 장기적으로 ‘가처분 소득 감소→소비 감소→경기악화 가중→대출 증가’의 악순환을 낳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성룡 연구위원은 “상위 40% 이내의 고소득층이 전체 부채의 60% 이상을 소유해 가계채무발 위기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저소득자와 금융취약 계층은 연체가 늘고 파산할 확률이 점점 커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고통은 ‘주변부’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소리다.

특히 그는 “극한 상황에 이른 한계 소비층의 비중이 작은 상황에선 정부의 감세정책도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금리 낮추는 일도 좋지만 금융회사가 리스크를 떠넘기려 변동금리 일색으로 만든 대출상품부터 구조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이 위원은 “이번에 다시 늘어난 담보대출 금액 한도도 고소득층의 재투자로 사그라지는 거품을 부활시켜 되레 가계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일축했다.

중복 보험상품은 해지

재무설계를 해주는 머니트리의 정일권 이사는 한숨부터 쉬었다. “빚 해법을 물어오는 고객이 많은데 뾰족한 수가 없어요.” 무엇보다 덩치 큰 주택담보대출이 가장 골치라고 했다.

재무설계·교육 업체인 에듀머니의 제윤경 대표는 “이미 지난해부터 고객들에게 빚부터 서둘러 갚으라고 조언했다”며 “지금은 실물경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만의하나 소득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오면 ‘가계 유동성 위기’가 닥친다”고 말했다. 즉 금고를 톡톡 털어 부채를 갚기보다는 일단 최소한 6개월 정도의 비상금을 확보하고 대출상환에 나서는 게 순서라는 소리다.

제 대표는 기술적 방법도 일러줬다. “예컨대 청약저축이 2000만원 있고, 부채가 1000만원 있으면 빚부터 갚는 게 낫지요.” 청약통장은 집을 사려고 가입한 것인데 ‘아파트 대박신화’는 이제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고 당장 돈이 없는 와중엔 깨서 빚을 없애는 게 유리하다는 소리다. 그는 “펀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빚을 떠안고 가면서 장기 투자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조금씩 주가가 오를 때 환매로 펀드 구조조정을 하고, 보험도 중복된 상품을 해지하면 과다 채무자에겐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 제 대표는 “무엇보다 이참에 가계의 자산과 부채를 전반적으로 구조조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다.

좀 더 구체적인 빚 탈출 해법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재무설계 회사인 포도에셋을 찾아가 양재중 팀장을 만났다.
 
부동산 덫(House rich, cash poor)은 가지치기로

가계 빚 1순위는 주택담보대출이다. 집값은 내리막길이고, 금리는 슬금슬금 오르면서 궁지에 몰린다. 독신여성인 김모(40)씨는 자영업자로 3년 전 인천의 아파트를 샀다. 값은 1억2000만원이었는데 7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싱글이라 안정적인 노후를 원했던 그는 부동산에 천착했고 부동산 급등기에 조급한 마음과 함께 ‘대박 난다’는 주변 권유로 당시 오피스텔도 매입했다. 6500만원짜리였는데 한도까지 꽉 채운 3300만원의 대출을 받아 샀다.

그러나 적자가 쌓이면서 마이너스 통장에 보험약관 대출, 지인 대출까지 받았다. 현재 빚은 1억2000만원, 원리금으로 월 220만원이 나간다. 월소득은 400만원 정도지만 자영업 특성상 불안하다. 무엇보다 추가로 영업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그는 포도에셋 상담으로 양도세 면제를 받는 1년 후 아파트를 ‘처분’키로 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하락세여서 파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이미 아파트는 차익이 거의 없고, 오피스텔은 5000만원 정도로 떨어졌다. 그래도 일단은 ‘가지치기’밖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양 팀장은 “부채 해결의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자산이 있으면 이것부터 처분해 갚는다. 자산이 없다면 대환대출(對還貸出)을 통해 금리가 싼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원칙 같지만 결단이 필요한 일이고, 그래야 빚을 돌려 막는 악순환을 막는다.
 
대출 구조조정

집이 한 채라면 팔 수도 없고 더욱 갑갑하다. 4인 가족의 가장인 회사원 이모(44)씨는 430만원의 월급을 받지만 대출상환액이 250만원이고, 소비지출을 포함하면 달마다 ‘마이너스 200만원’ 살림을 꾸리고 있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1명씩 둔 전형적인 40대 가장의 가계부다.

과소비를 해서 빚이 생긴 게 아니었다. 사교육비와 주택담보대출(8500만원), 신용대출(1400만원)로 한 푼 두 푼 지출이 늘다 보니 ‘주머니 부족→신용대출→현금서비스(1000만원대)’라는 전형적인 빚 수렁에 빠졌다.

포도에셋은 대환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금융사를 모조리 훑어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가장 많이 해주면서도 금리는 낮고, 신용대출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견적을 받았다. 그러곤 몇몇 후보 은행을 골라 흥정을 했다.

그 결과 A은행에서 1%포인트 싼 금리로 담보대출 9600만원을, 신용대출은 2%포인트 낮게 1000만원을 빌렸다. 일단 신용카드 서비스를 단숨에 갚고 총 대출상환액은 252만원에서 125만으로 줄였다. 지출도 가계부를 작성하며 허리띠를 졸라매 360만원에서 100만원을 덜 쓰게 됐다. 이랬더니 3개월 만에 가계수지가 정상화됐다.

지갑에 대못질하기

20대 후반의 회사원 박모씨는 월급이 900만원인 골드미스다. 사회생활 5년간 억대 연봉을 받았다. 그러나 업무 스트레스로 퇴근 후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지 않으면 귀가하지 못했다. 당연히 모은 돈은 없었다.

그러다 몇 개월 휴직하는 동안 평소 소비습관을 멈추지 않은 탓에 신용카드는 물론 인터넷 사채, 불법 사채(연 270%)까지 썼다. 대출액 5000만원에 월 갚을 돈은 700만원.

다행히 두 곳의 캐피털 업체에서 연 33% 금리로 3000만원을 대출받아 일부 빚을 갚았다. 양 팀장은 “악성 대출은 없앴지만 소비를 고치는 게 위기 재판을 막는 핵심”이라며 “이럴 땐 가족이나 주변에 알려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사실 현장을 돌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첫마디는 ‘소비 통제’였다. 앞으로 불황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면 고용과 소득은 더욱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고 지갑을 닫아야 버틴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소비가 줄면 경제는 더욱 녹슬게 된다. 현장의 목소리는 정부가 고용에 초점을 맞추라는 주문으로 들렸다.

김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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