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에세이>의리는 정의를 앞서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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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마피아가 정의를 말하면 사람들은 웃는다.살인과 폭력으로 점철된 범죄집단이 무슨 정의를 논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언론이라든가 사법당국처럼 사회를 떠받치는 체제들이 따뜻한 인간적 실질을 간직할 때의 이야기다.
체제가 보통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상실하고 위선과 권위의식만을드러낼 때 마피아는 오히려 사회를 비웃을 것이다.
아일랜드계 마피아가 지배하는 뉴욕 뒷골목의 일화를 그린 배리레빈슨의.슬리퍼스'는 바로 그런 영화다.
뒷골목의 가게 아저씨는 법정에 선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신문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법정에 무슨 정의가 있어? 법정이라는 것은 돈 있는 사람들의 시장이야.거리를 어슬렁거리는창녀들이 훨씬 정의롭지.” 마피아는.사람을 생각해주는'마음에서자기들의 정의를 발견한다.그들의 정의는.의리'에 있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일류대학을 나오고 머리만 불쑥 커진 채 별로 고생도 안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은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절대 현실같은 것을알 리가 없는 것이다.
시정의 현실로 내려오면 거기에는 선과 악을 하나로 합쳐 받아들이는 모호한 물결이 있다.어쩌면 논리나 법체계와는 다른 이 두루뭉실한 온정주의가 사회를 간신히 폭발하지 않게 붙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명의 어린 친구들이 있다.그들은 어처구니 없는 장난 때문에함께 소년원에 갇힌다.그곳에서 그들은 구타.고문.독방 감금.성폭력을 당하며 처절하게 무너져간다.
꿈과 인간성을 상실하고 신부가 되고 싶었던 두 소년은 뒷골목의 범죄자가 돼버린다.이 범죄자들은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14년전의 악랄했던 소년원 간수와 마주치고 그를 죽여버린다.
.슬리퍼스'는 검사가 된 다른 친구와 신문기자가 된 또다른 친구가 이 살인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벌이는 법정야화다.
이 검사와 신문기자와 살인자들은 법도,사회도 믿지 않는다.이들이 유일하게 속을 털어놓는 것은 자기 마을의 늙은 마피아 대부 .대니'뿐이다.
살인을 저지른 친구들은 위증에 의해 구원되고,고의로 재판에 진 검사친구는 사표를 쓰고 목수가 돼 혼자 늙어간다.
석방된 두 친구들은 여전히 그 모양 그 꼴로 지내다 뒷골목의논리대로 살해된다.
혼자 영화관에 앉아 이 어둡고 스산한 결말을 보며 나는 더이상 글을 읽고도 감동받을 수 없는 자신을 깨달았다.
얼굴은 웃어도 눈만은 차갑게 빛나는 사람들 뿐이었던 대학시절의 긴 고통과 그래도 웃을 때는 눈까지 활짝 웃는 사람들이 있던 군대시절의 짧은 행복을 다시 떠올렸다.그리고 나는 자신에게되물었다.너희가 의리를 믿느냐.
(소설가.이화여 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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