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대중문화키워드>2.펑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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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전통적인 세대는 상상도 못할 몸짓과 언어들만이 존재하는 카페들이 있다.약물이란 뜻의.드럭'(홍대앞 카페),대학로.살'바,홍대앞.곰팡이'.프리버드',산울림극장옆.스팽글(전 태권브이)'.재머스'등이 그곳들로 이 어두컴컴한 록카페들이 바로 언더그라운드 젊은이 문화의 터전이다.
좁은 공간이지만 이곳은 격식이나 관습을 찾아볼 수 없는 해방구를 형성한다.철저한 익명성이 보장받는 환각적인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은 몸을 떤다.환각의 절정은 옷을 찢으며 사람들의 숲으로몸을 던지는.무대 다이빙'.
반제도권.탈규범의 펑크가 일부 젊은이들에게는 아주 깊숙이,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펑크의 동조세력으로 자리잡은 한해였다.
펑크를 모르고는 PC통신 언더동(하이텔).메탈동(천리안)등의정보들을 이해할 수 없다.기성세대를 공격하는 말이 그들의 공용언어라고 할 수 있다.
.옐로키친'.크라잉너트'등 10대들에게는 유명인사인 이른바.
드럭밴드'들은 펑크 고유의 독특한 아마추어 취향을 갖는다.그들에게 음악의 질은 중요치않다.펑크록은 음악 스타일보다 폭발하는듯한 태도가 더 중요하다.펑크라는 말은 60년대 미국에서 비틀스나 롤링스톤스를 숭모하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비제도권 밴드들에 붙여준 이름.70년대 서구사회의 안정된 경제가 무너져 갈 때 10대들의 반항이 고조됐고 76년.섹스피스톨스'의 탄생과 함께 펑크록은 기존의 가치관에 일 격을 가하며 록 음악의 종언을 울부짖었다.
펑크는.무조건' 규범을 거부한다.음악이나 예술적인 측면은 물론 그들의 삶 자체까지.부조리하고 숨막히는 사회에 대해 행동.
몸치장.소리와 언어로 대항했다.
왜 뒤늦게 우리에게 펑크인가.
수능시험에 찌들리고 기를 펼 데가 없는 10대들.기성세대와 담을 쌓은 그들에게 펑크문화는 숨통처럼 다가왔다.흑인들의 밑바닥 삶의 경험이 결핍된 랩음악,장난기어린 힙합의 취향등 기성세대가 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은 모두 펑크라는 영역으로 수용됐다.서구에서 원래 그랬던 것처럼 펑크문화는 철저히 아마추어고언더그라운드다.
그러나.삐삐밴드'.주주클럽'등은.서태지와 아이들'처럼 기존 대중음악들을 당황스럽게 만들면서 연예계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됐다.최근.드럭밴드'가 TV에도 나오자.제도권에 들어가 상품화되면 끝난다'는 한탄이 펑크매니어들로부터 나오고 있 다.
서울대 캠퍼스내에서 본격 펑크 록 공연이 벌어져도 이제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펑크록'의 전령 섹스피스톨스는 17년만에 부활해 유럽과 일본에서 공연을 펼쳤지만 늙어버린 그들은 호소력이 미약해졌다.
그러나 반항적 젊음은.펑크'가 죽더라도.펑크'의 변형을 계속터뜨릴 것이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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