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1년 내 회담 … 한미 FTA 재협상 … 한반도 요동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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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한반도 정책
북핵 6자회담, 대북 직접협상 병행할 듯
한국 인사들과 친한 바이든 영향력 주목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압승으로 끝난 미 대선 결과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8년 만의 정권 교체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적 가치 확산을 추구해 온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이 퇴조하고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중시해 온 국제협력과 다자주의 부활로 이어질 전망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책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집권 초기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긴장을 조성했던 것과는 달리 오바마 당선자는 북한과의 직접 협상 등 적극적인 개입 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조 바이든 부통령 영향력 클 듯=오바마 진영의 한반도 정책은 민주당 내에서 외교 경험이 많은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 의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6선 관록으로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아온 바이든은 김대중 전 대통령,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 한나라당 미국통 박진 의원 등과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는 등 친분이 깊다. 오바마 캠프에서 한반도 정책을 총괄해온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팀장도 바이든의 보좌관 출신이다. 바이든은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고 햇볕정책 등 대북협상 노선을 지지해왔다. 이에 따라 바이든은 오바마 집권 뒤 북핵 문제와 동맹 등 한반도 현안에서 각종 조언과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변화 예상되는 대북 정책=오바마 당선자는 선거운동 초기 “집권 1년 안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겠다”고 공언했다. 이로 인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을 비중 있게 검토했던 클린턴 행정부 말기와 같은 양상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현재까지 파악된 오바마 진영의 대북 정책을 종합하면 6자회담과 직접 협상을 병행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6자회담이란 다자 협력 틀을 유지하면서도 6자회담 현안에 국한해 이뤄졌던 북·미 대화의 격을 높이고 논의 범위를 넓힐 가능성이 크다. 고위급 대북 특사가 임명될 것이란 관측과 함께 경선 과정에서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이름이 거명되기도 한다. 협상 내용도 핵 문제를 포함, 미사일·인권 문제와 함께 북·미 관계 개선, 경제 지원 등을 포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괄타결 방식의 빅딜이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오바마 정권의 출범으로 급속한 관계 개선이 저절로 이뤄진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민주당이 방법론에서 다소 유연하기는 하지만 비확산이나 북한 인권 문제에서는 공화당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당장 현안인 북핵 시설 검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당선자가 선거 말기에 접어들면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기 전에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이다. 북한이 관계 정상화 같은 ‘당근’만 챙기고 핵무기는 계속 유지하려 들면 체면이 손상된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강경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대화에 의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릴 경우엔 클린턴 행정부 때 적극 검토됐던 북 핵시설 정밀 타격 등의 강수를 다시 고려할 수도 있다.

◆동맹 파트너의 역할 분담 요구할 듯=한·미 동맹이란 토대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당선자는 “부시 행정부가 한국의 입지를 왜소화시켰다”면서 한국의 발언권을 강화시켜 주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역할 분담에 대해서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오바마 당선자는 “과거 군사동맹에 의존했던 한·미 동맹 관계를 공유 가치와 상호이익의 토대에서 세워져야 한다”고 밝혀 한국의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해 올 가능성이 점쳐진다. 당장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역할 확대가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부시 행정부 시절 합의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연합사령부 해체,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 주한미군사령부 개편 등의 현안은 큰 원칙에서는 변동이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동북아 질서란 큰 틀에서 볼 경우 한국의 입지에도 미묘한 변화가 예상된다. 공화당은 한국·일본과의 동맹을 중시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경향이 강한 데 비해 민주당은 중국과 경쟁하면서도 협력 파트너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 미·중 관계와 미·일 관계의 균형추가 움직이면서 한·미 관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프랭크 자누지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팀장. 조 바이든 부통령의 보좌관 출신이다. 아시아 지역 전체 책임자인 ‘중국통’ 제프리 베이더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과 함께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 정책 밑그림을 그렸다. 오바마 행정부가 꾸려지면 바이든 부통령과 국무장관의 지휘 아래 한반도 정책 실무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베이더와는 예일대 동문이다.

예영준·강찬호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 전망
대선 내내 “자동차 분야 불리” 불만 드러내
“집권 후엔 후보 때와 입장 달라질 것” 관측

새로 들어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유력한 재협상 분야는 자동차와 농축산물 등이다.

오바마는 대선 기간 줄곧 한·미 FTA를 비판했다. 6월 미시간주 유세 때는 “한국 차 수십만 대를 미국에 들여오면서도 미국 차 수출은 수천 대로 계속 제한하는 한·미 FTA는 현명한 협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자동차 분야 FTA가 한국에 유리하다는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박현수 수석연구원은 “오바마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와 지지 기반인 근로자층에 대한 배려가 겹쳐 자동차 재협상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도 5일 “FTA에 이견이 있는 부분은 계속 협상해 서로 최상의 결과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협상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미국이 재협상을 통해 자동차시장에 빗장을 걸 가능성도 있다. 3000㏄ 이하 승용차에 대해서는 미국이 FTA 발효 즉시 관세(2.5%)를 없애기로 했는데,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이 부분의 손질을 원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위기와 고유가로 미국에서 소형차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고, 미국 업체들의 소형차 경쟁력은 뒤처지고 있어 이런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농축산물 분야에선 우리나라가 10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기로 한 돼지고기의 개방을 서두르라고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재협상까지 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후보 시절에는 선명성을 내세우려고 한·미 FTA에 반대했지만, 대통령이 되면 보다 부드러운 입장을 취하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또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국제 공조가 중요한데, 재협상을 요구해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은 “미국이 재협상이 아니라 자동차 개방 시기를 좀 늦추는 식의 추가 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는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열리는 의회(레임덕 세션)에서 한·미 FTA를 비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레임덕 세션에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각종 법안을 처리하는 게 우선 과제여서 한·미 FTA를 논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 "재협상 없다”=우리 정부는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는 5일 브리핑에서 “재협상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새 행정부가 한·미 FTA를 객관적으로 검토하면 협정 내용이 균형 잡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쇠고기 협상 때 우리가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재협상을 막을 명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하대 정인교(경제학) 교수는 “유럽연합(EU)과의 FTA를 이른 시일 안에 타결해 미국을 압박하면 미국 의회가 재협상 없이 비준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
보호무역 장벽 치면 ━ 경기부양 돈 풀면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철학은 ‘큰 정부’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필요하다면 규제의 벽을 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산업과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둔다.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방과 경쟁을 강조하는 부시 행정부와는 180도 다르다.

오바마 당선인은 원칙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쪽만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입는 불평등 무역을 거부하고 공정 무역을 강조한다. 복지정책의 무게중심도 중산층 이하 서민에게 가 있다. 소수 약자들이 교육과 의료 혜택에서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세정책도 근로자나 은퇴자에 대해서는 세금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추진된다. 반면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을 앞당겨 폐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많다. 청정에너지와 대체에너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집권 초기에는 이런 경제정책을 밀어붙이기보다는 발등의 불인 경제회생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그의 집권이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민주당 정권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에 따라 한국의 대미 수출이 주춤할 가능성이 있는 점은 위기다.

하지만 오바마 당선인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랏돈을 더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그는 1억9000만 달러 규모의 2차 경기부양책을 제시했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미국 경기가 빨리 회복되면 오히려 한국의 대미 수출이 활기를 띨 수도 있다. 이 점은 기회다.

금융위기의 진앙인 미국에 새 권력이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민주당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기 때문에 금융위기 해소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경기도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국의 무역 관행이나 노동·환경 기준의 재정비를 통해 미국에 무역보복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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