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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던 캐디의 이름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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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번 여행에서 '캐디'라는 단어는 우리와는 요원한 것으로 인식해왔다.

명문 골프장에는 상시 대기하고 있는 캐디가 있어 언제라도 내가 원할 경우 캐디 동반이 가능하지만 일반 골프장에서는 대기하고 있는 캐디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캐디를 원할 경우는 미리 골프장에 연락을 취해야 했고, 이때 동반하게 되는 캐디는 그 골프장을 잘 아는 내부 직원이거나 알바 뛰는 동네 청년들이었다. 사전 예약도 번거롭거니와 여행 비용 절감 차원에서도 캐디의 이름은 우리에겐 애써 지워야 하는 이름이었다.

물론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 직접 트롤리를 끌고, 공 찾아 다니고, 디봇 손질하고, 내 클럽을 챙기는 것도 거리를 보는 것도, 그린에서는 또 얼마나 바쁜지 볼 닦고, 라이 보고, 볼 마크 손질하고.... 무엇보다 난생 처음 가는 골프장에서, 야디지북 하나로 코스를 파악하고 그 판단 만을 믿고 해저드나 벙커를 넘기는 스윙에 임해야 함이 불안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그 동안 한국에서 캐디 언니들 덕분에 얼마나 '날로 먹기 골프'를 쳤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새삼스레 한국의 캐디님들께 고마움과 존경심을 느끼곤 했다. 제 클럽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고, 제 공 하나 찾기도 버겁고, 제 라이 하나 살피기도 정신없는 마당에, 대접 받기 좋아하시는 한국 골퍼들을, 그것도 네 명씩이나 한 사람이 건사하고 다니며 얼르고 달래고 밀고 당기고 그날의 라운드를 리드하는 한국의 캐디 언니들은 누가 뭐래도 탁월한 전문가 집단임이 분명하다.

4 인분 공 찾아주시랴, 4 인분 피치마크 손질하시랴, 4 인분 클럽 챙겨주시랴….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멀티태스킹은 한국 캐디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캐디 언니 많이 도와주는 착한 골퍼가 되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린 노 캐디 시스템에 서서히 익숙해져 갔고, 도리어 코스와 내가 일대일로 맞짱 뜰 수 있는 노 캐디 시스템이야말로 진정한 골프가 아니겠냐는 자위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원정을 마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캐디의 이름은 우리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듯 했다.

캐디의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된 것은, 잔디 보호를 목적으로 아예 전동 카트를 사용하지 않는 스코틀랜드의 명문 클럽에서부터다. 이런 클럽에서는 캐디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카트를 원하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캐디의 힘을 빌리려 할 것이고, 명문 클럽인 만큼 비지터들의 수가 많은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내가 말이지 이번에 OOO 코스에서 XX개를 치고 왔잖아"
바로 이 말 한 마디를 위해서다. 평생 한 번 갈까 말까한 코스를 굳이 찾아오는 골퍼들이라면 기필코 이 코스에서 스코어 욕심을 내게 마련이고 그러면 대개 캐디를 끌어들여서라도 스코어 관리에 열을 올리게 된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잘 생긴 캐디 David를 동반하게 되었다. 원래는 우리와 조인했던 중국 골프채널 사장님이 부른 캐디였는데 1인 1캐디가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데이빗은 우리에게도 헌신적인 봉사를 해 주었다. 볼을 찾아주는 일은 기본 이고, 매 홀 코스 설명에, 각 홀 별 별명의 유래나 벙커의 닉네임도 설명해주며 우리의 라운드를 2배는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홀은 타이거우즈도 벙커에 빠진 홀입니다.”
“이 벙커의 별명은 Principal's Nose입니다. 아주 콧대가 높은 벙커라 빠지면 뒤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조심하세요.”

간사한 것이 사람 맘이라고 지나 온 골프장들에서 캐디를 동반했더라면 훨씬 많은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뒤늦게서야 밀려왔다.

이다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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