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연합 “정치탄압이다” 반발하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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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공금 유용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 탄압’이라고 반발했던 환경운동연합(환경련)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환경련은 3일 “최근 부실한 회계 관리와 전 기획운영국 김모 부장의 공금 유용 사건 등으로 국민께 큰 실망을 끼친 데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환경련의 대국민 사과는 1993년 4월 창립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환경련은 이날 조직 쇄신안과 회계 투명화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또 별도의 기자회견도 없이 사과문 한 장을 언론에 배포했을 뿐이다.

◆행동 없이 말에 그친 사과=환경련은 29일 열릴 전국대표자회의 때까지 ‘특별대책회의’를 구성키로 했다. 특별대책회의는 조직 운영과 활동 방향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쇄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지난달 30일 사의를 표한 윤준하 공동대표와 안병옥 사무총장의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3일 오전 속개된 중앙집행위에서도 조직 쇄신안 등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수사가 진행 중인 데다 중앙과 지역 조직의 입장 차가 커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기자회견 형식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환경련의 대국민 사과는 A4 1장 분량의 사과문을 기자들에게 e-메일로 전달하는 선에서 끝났다. 최재천·조한혜정 공동대표도 물러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사태 수습을 이유로 사의가 반려됐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환경련 측의 사과 강도가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도덕성이 무너진 시민단체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환경련은 공금 유용 혐의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거세게 반발했다. 최열(59) 전 환경련 대표는 9월 24일 민변 등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검찰 수사는) 한반도 대운하 반대, 촛불시위 주도 등 개혁을 위해 앞장선 시민단체의 발목을 잡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검찰은 한국 환경운동의 대부인 최 전 대표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사업비로 애인 빚 갚아”=1일 구속된 환경련의 회계담당자 김모(33) 전 기획사업부장은 2004년 8월 “어린이 환경연극을 한다”며 지원받은 산림환경기능증진자금(녹색자금) 가운데 7800만원을 당시 여자친구인 유모씨의 개인 빚을 갚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당시 “어린이 산림교육 뮤지컬 로빈손을 연장 공연하겠다”며 산림조합중앙회에서 모두 1억8000만원을 타냈지만 실제 공연은 하지도 않았다. 환경련의 김모 시민사업국장을 포함해 다른 환경련 직원들은 김 전 부장의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산림조합중앙회의 지원 자금 중 1억200만원을 환경련 직원 급여와 퇴직금·보험료 등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부장은 2005년 3월에도 산림조합중앙회에서 ‘어린이 환경영상 음악극’ 명목으로 6200만원을 받아 3400만원을 횡령했다. 이 중 1200만원은 환경련 직원 47명의 급여로 썼지만 나머지 890여만원은 당시 애인이던 이모씨에게 생활비나 대출금 상환에 쓰라고 줬다. 자신도 스포츠카를 사고 채무를 갚는 데 1200만원을 썼다.

그는 특히 2006년 3월부터 최근까지 바이엘코리아·HSBC 등 대기업의 후원금과 태안기름유출 관련 각종 후원금에서도 1억300여만원을 빼내 애인 이씨에게 주는 등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효식·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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