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 소개 앞장서온 독일 출신 세바스찬 임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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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때늦은 잉그마르 베리만(78) 붐이 일고 있다.
팔순을 눈앞에 둔 이 북구 거장의 전성기는 50년대 중반부터60년대까지.그러나 한국에선 그가 65세때인 83년 만든 은퇴작 .화니와 알렉산더'가 지난달 9일 첫 개봉작으로 동숭씨네마텍에서 막을 올렸다.
이어 30일부터는.외침과 속삭임'등 걸작 6편을 소개하는 베리만 회고전이 같은 극장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그 전날인 29일엔 초기 걸작.산딸기'(57년작)가 소리.소문없이 비디오로출시됐다.
금세기를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들이 은퇴한지 13년만에 돌연 무더기로 소개되는 현상은 한국의 문화수준을 그대로 드러낸 듯해안타깝지만 말로만 그의 명성을 들어온 일반관객들에겐 다행이 아닐 수 없다.이런 행운을 열어준 선구자는 예술가 도,흥행업자도아닌 벽안의 신부다.성 베네딕도수도원 시청각종교교육연구회 대표로 일하는 독일 출신 귀화인 세바스찬 임 신부(61.사진).
그는 지난 7월.제7의 봉인'을 비디오로 출시,베리만을 국내에 첫 소개한데 이어 넉달만에 베리만의 같은해 작품.산딸기'를소개했다.
내년에는 역시 베리만의 걸작.처녀의 샘'과.여름밤의 웃음'을출시할 예정이다.
베리만영화만이 그의 전공은 아니다.93년부터 키에슬롭스키의.
십계',타르코프스키의.안드레이 류블로프'와.솔라리스'등을 비디오로 출시해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러시아.동구의 거장들을 국내에 처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3년간 그가 수입한 아트 필름은 줄잡아 20여편.세속의 미와즐거움을 대표하는 영화를 신부가 앞장서 소개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저에게 관심있는 영화는 신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안하지만 보고 나면 어딘지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는 느낌을 안겨주는것들입니다.그것은 곧 종교적 복음과 통하지요.” 신부로 서품된66년 이래 한국에 머물러 온 그는 히틀러에 반대해 좌천된 기술자 아버지의 혈통을 따라 반골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다.
서슬퍼런 70년대 금화(禁畵)였던 서구의 걸작 정치영화들을 필름째 들여와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는가 하면 해방신학이론을 소개하는등 문화를 통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왔다.
80년대부터는.할리우드 영화만 일방 공급받는 한국 관객들이 안타까워'아트 필름을 통한 간접선교로 활동방향을 바꿨다.
“의식이 생기는 영화,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는 영화,특히 죽음과 사랑에 관해 울림이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입니다.” 판매량이 기껏해야 1천개 선인 그의 비디오들은.으뜸과 버금'.영화마을'등 전문점에서만 구할 수 있다.직접 주문하고 싶은 사람은02-279-7429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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