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라톤 세계 도전史-1935년 손기정 첫 세계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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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후쿠오카=정태수 기자]활 쏘는 솜씨만 우리민족의 자랑거리는아니었다.예부터 뜀박질 잘하기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고구려때는금품을 받고 중국 연나라에 진출,장거리 심부름꾼으로 활동했다는.천리인(千里人)'들에 대한 기록도 있다.하루에 천리를 뛴다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지세가 험한데다 도로가 엉망이라 잘 뛸 수밖에 없다는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의 동인선주설(東人善走說) 역시 우리민족의 마라톤 능력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한국마라톤 1호 공식기록은 이같은 자랑이 무색할 정도였다.1927년 10월15일 조선신궁대회에서 서울대표 마봉옥이세운 3시간29분37초.당시 세계최고기록(2시간29분1초8)보다 1시간 이상 뒤졌다.물론 이는 정돈된 코스에 서 달린 게 아니라 종로통.퇴계로의 구경꾼들과 마차.소달구지.손수레 행렬을이리저리 헤치고 달리면서 세운 것이어서 저조한 기록이랄 수만은없다. 한국마라톤의 명성을 처음 기록으로 나타낸 것은 그로부터8년뒤.1935년4월 조선마라톤대회에서 신의주청년 손기정이 2시간25분14초의 세계최고기록을 수립했다.그는 이듬해 8월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일제 식민통치에 신음하던 한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한동안 시들했던 한국마라톤이 다시한번 세계에 위용을 떨친 것은 47년4월 보스턴마라톤에서였다.여비도 없어 미군 수송기에 쪼그려 앉아 태평양을 건넌 서윤복이 그해 세계최고기록(2시간25분39초)으로 우승했고,3년뒤에는 함기용.송길윤 .최윤칠이 1~3위를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52년 헬싱키올림픽(최윤칠).56년 멜버른올림픽(이창훈) 연속 4위로 명맥을 잇던 한국마라톤은 뜻하지 않은 침체기에 접어든다.
한국마라톤의 기나긴 침묵을 함성으로 바꿔놓은 주인공은 황영조였다.91셰필드유니버시아드에서 우승,스타탄생을 예고한 그는 92년2월 벳푸-오이타마라톤에서 2시간8분47초로 2위를 차지,한국마라톤을 세계정상으로 끌어올렸다.6개월뒤 황영 조는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몬주익언덕의 신화'를 창조하며 56년만에 올림픽월계관을 되찾아 온 국민을 가슴 벅차게 했다.
이제 이봉주가 달린다.92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물을 마시다 넘어지는 바람에 기권,동갑내기 팀동료 황영조의 영웅탄생을 바라만 봐야 했던 그는 절치부심 강훈끝에 지난 여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한국마라톤의 명성을 재확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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