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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해 저문 오후 6시 밤이 길어도 새벽은 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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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20면

내년 회복 가능할까
“하루하루가 ‘오늘도 무사히’지요 뭐….” 우리은행 박승안 PB팀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나날에 고객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박찬호ㆍ박지성 선수의 재산관리인으로 유명한 실력파지만 “나름대로 고객 수익률을 방어한다고 힘썼는데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터져 반성만 하게 된다”고 했다. 외환위기 때 일터였던 삼성자동차가 르노로 넘어가는 현장을 지켜보는 등 숱한 재테크 곡절을 겪으며 다졌던 그의 강심장도 이번엔 예외였다.

"좌절의 투자 시계" 지금은 어디쯤일까

박 팀장이 보는 고통은 2개로 나뉜다. 정신적 패닉과 실물 쇼크다. “심리 공황은 이르면 올해 안에, 늦으면 내년 상반기엔 진정 국면에 진입할 겁니다.” 세계 정부가 손잡고 돈줄을 풀기 시작하면 공포를 다스리는 약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스피도 한국ㆍ미국의 통화 스와프 성사가 전해지면서 폭등세를 보였다. 다만 경기 악화로 겪을 체감 고통은 2010년 전후에나 안정을 찾는다고 봤다. 실물의 암세포 전이는 금융과 달리 천천히 진행되고 돈 공급 말고도 복합처방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평생투자 전도사인 미래에셋의 강창희 투자교육연구소장은 “아무도 어려운 시기의 끝을 짚어낼 순 없다. 다만 역사를 보면 끝나지 않은 위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각국 정부의 대책이 하루 아침에 나타나진 않겠지만 주가는 경기에 선행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게 있다. ‘유동성 장세’ 가능성이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상반기 말까지 상황이 수습되고, 주가가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면 돈이 다시 풀려 다시 주식으로 몰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거품분석 전문가인 슈로더투신 장득수 전무는 “과거 금융투기와 거품붕괴 역사를 보면 전쟁ㆍ혁명ㆍ격변기 등을 거치고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주가가 급등한 사례가 여럿 있다”고 말했다.

굿모닝신한증권 이계웅 펀드리서치 팀장은 “미국 대선이 11월 4일 끝나면 새로운 리더십이 기대되고, 각국 금융공조도 탄력을 받아 시차를 두면서 영향을 줄 것”이라며 내년 초까진 시장이 일단 진정 기미를 보인 뒤 3분기엔 슬슬 회복 기대감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다.

저축의 시대로 바뀌나
물론 당장을 보면 ‘현금이 왕’ 대접을 받는다. 투자시계를 봐도 그렇다.<그래픽 참조> 12~6시는 경제성장률이 왕성하고, 주식이 고평가되면서 탐욕이 발동하는 ‘투자의 전성시대’인데 주식과 원자재가 수익률 챔피언에 오른 최근 5년간이 그랬다. 그러나 지금 시계바늘은 경기낙하와 군중투매가 나타나는 현금ㆍ저축의 시대로 접어들며 어두운 밤 시간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종우 센터장은 “그동안 업계가 ‘저축에서 투자로 축이 옮겼다’고 외쳤지만 마케팅용 냄새가 짙다”고 했다. 그는 “이번 위기는 단순히 경기둔화에서 온 게 아니라 그동안 장기호황을 불렀던 세계경제 구조가 약화됐기 때문”이라며 “저축에 무게가 실린다는 데 어느 정도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계바늘은 계속 돌아간다. 슈로더투신 장득수 전무는 “시점을 콕 찍어 예언할 순 없어도 불황에 따른 금리하락으로 채권이 대세를 보인 뒤 다시 주식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바늘의 순환은 자본주의 특질이다. 1960년대에 미국 경제는 9년간 성장을 구가했다. 돈을 찍어내 경기를 떠 받쳤다. 경제학자들은 영원한 성장이 실현된 것처럼 들떴고, 심지어 한 대학의 경제학과는 경기순환론을 폐강하기도 했다. 후유증으로 찾아온 것은 인플레이션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뒤의 불황기에 질린 투자자들은 여전히 ‘원금 보전’구호를 신주처럼 모셨고 물가를 감안하면 결국 마이너스 인생을 살았다.

하나은행 김창수 재테크팀장도 “최근 저축상품 선호는 큰 손실을 경험한 투자자들의 원금보전 욕구와 곳간이 쪼그라든 은행들의 고금리 제공이 겹쳐 일어났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경제구조상 옛날처럼 연 8~10%의 확정 고금리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산의 가격은 ‘금리와 역관계수’다. 경기가 후퇴하고 금리가 낮아질수록 주식 같은 자산값이 매력적으로 변한다.

박승안 팀장은 절충적으로 ‘배분 포트폴리오’를 얘기했다. 저축과 투자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투자 보따리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소리다. 결국 분산의 지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화뇌동하지 않는 ‘화가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남들이 좋다는 소리에 나무를 그렸다가, 다시 꽃을 그렸다 이러면 작품이 나오긴 어렵다. 박승안 팀장은 “투자 성향을 다시 진단받아 보고, 투자자금 성격과 목표를 확인한 뒤 직접 상품을 고르면서 스케치하고 색을 입혀야 막판에 웃는다”고 말했다. 이번 위기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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