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더 엄마이기 위하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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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의 여행’ 캠프가 열린 지난달 29일 가평 자라섬 행사장에서 여주원군(右)이 어머니 신미옥(中)·자원봉사자 박용운씨와 함께 파이팅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지난달 28일 경기도 가평의 자라섬. 휠체어를 탄 아이 12명과 그 부모들이 종이에 소원을 적어 넣었다. 이들은 종이를 풍선에 붙여 하늘로 날렸다. 아이들은 모두 근이영양증(筋異營養症)을 앓고 있다. 근육을 이루는 단백질이 점점 퇴화하는 병이다. 하체에서 퇴화가 시작돼 종국엔 심장까지 퍼진다. 보통 20~25세까지 산다.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았다.

김현석(15)군은 종이에 ‘수연(가명)이와 친하게 지내게 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수연이는 친구의 여동생이다. 또래의 사춘기 소년처럼 현석이도 소소한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 박원숙(44)씨는 아들에게 “휴대전화에 있는 수연이 사진을 지우지 않으면 캠프에 안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현석이는 사진을 지웠다. 엄마는 ‘마음이 아프지만 이웃에 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옆에 있는 자원봉사자는 “너무나 평범한 소원이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엄마는 현석이의 유일한 가족이다. 2001년 현석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병을 발견했다.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걷지를 못했다. 병원에서 이 질환은 ‘모계 유전’이라고 했다. 엄마의 유전자 형질이 그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현상이다. 아버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2003년 부모는 이혼했다. 이 병을 앓는 아이의 어머니들 중 상당수가 이런 이유로 혼자가 된다. 캠프에 참가한 한 어머니는 “아이를 ‘잘 보내기 위해’ 키우는 거지만 오래도록 아이의 엄마로 남고 싶다”고 했다.

많은 아이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적었다. ‘휠체어가 들어가는 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다. 캠프 참가자는 모두 기초수급 대상자이거나 차상위 계층이다.

이날 열린 ‘영웅들의 여행’ 캠프는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어위시(Make-a-wish) 재단이 마련한 것으로, ‘너희가 바로 영웅이고 희망’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저녁엔 깜짝 이벤트도 있었다. 부모들은 직접 만든 상장을 아이들에게 주고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편지와 조그만 선물을 했다.

여주원(16)군은 1만원짜리 지갑을 샀다. 주원이는 “엄마가 마트에 갈 때마다 지갑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어머니 신미옥(38)씨는 “그걸 옆에서 다 보고 있는지 몰랐다”며 지갑을 품에 안았다.

부모들은 행사가 끝난 뒤 아이들 키우는 얘기를 나눴다. 서로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들은 속에 있는 얘기까지 털어놨다. 처음엔 우울한 사연이 많았다. “명절 때 내려오지 말라”는 시누이 말에 겉으론 웃었다는 엄마, “공부 못 하면 내다 버릴 거야”라며 아이를 닦달했다고 후회하는 엄마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부모들은 희망을 말하기 시작했다.

“기립 치료라고 있어요. 기구를 이용해 서게 하는 거죠. 아이가 일어나는 순간 ‘어지러워’라고 하더군요. 매일 앉아 있으니까, 선 자세의 눈높이가 현기증 날 정도로 높았나 봐요. 병을 고쳐 줄 순 없겠죠. 하지만 늦춰 줄 수 있어요. 그래야 부모로 오래 남지요.”

두 아이 모두 근이영양증을 앓는 권선희(52)씨가 말하자 옆에 있던 부모들의 눈이 반짝였다. 부모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글=강인식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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