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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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독신자 서클에서 고박사의.미혼'문제가 화젯거리로 삼아진 적이있었다..의사'하면 열쇠 몇개를 지참금으로 가지고 결혼하겠다는여성이 줄을 선다는 요즘 세상에 설마하니.결혼 못한'것은 아닐테고 필경.결혼 안한'것일 텐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논란이었다.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여인의 비밀화원을 허구한 날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에 아예 섹스에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다.
그렇다면 산부인과 남자의사는 맨 독신자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고박사는 웃으며 부정했다.
“그럼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고 있거나….뭐 그런 사연이라도 있는 겁니까?” 누군가가 묻자 모두들 유행가조라며 핀잔을 주었었는데,정말 고박사는 아리영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외간에 아기를 갖지 못할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 왜 임신이안되는 것일까요?” 그때만 해도 아들과 만나기 전이어서 을희로서는 아리영과 그의 남편 사이에 아기가 생기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질문했었다.
“그런 경우는 의외로 많습니다만 아직까진 그 이유를 캐내지 못했습니다.의학의 수준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이거나,신의 조화이거나…,두가지중 하나일 테지요.” 슬픈듯 진지한 고박사의그때 표정이 역력히 떠오른다.결국 고박사는 아들의 라이벌이 되는 셈인가.그의 말대로 이 세상은 참 좁다고 해야할지,이 세상인간관계는 참 얄궂다 해야 할지 을희는 긴 한숨을 쉬었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어머니 한숨소리에 아들은 절하듯 고개를 떨구었다.
“아기가 없는 처지라 하더라도 남의 가정을 정 망가뜨릴 참이냐?” 을희는 추궁의 손을 늦추지 않았다.데릴사위나 매한가지인아리영 남편의 처지도 딱했고,아리영 아버지에 대한 체면도 말이아니다. “죄송합니다.” 아들은 또한번 사죄하며 비통하게 한마디했다.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 이상 남자를 행복하게해주는 일은 없습니다!” 말의 무게가 천근만근 같았다.
아리영이 맥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얘기는 그들의 마음과 몸이이미 하나가 되었고 아리영의 육신이 뜨겁게 맥을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남편을 두고 외간 남자와 외국에 가 천연스레 얼린 아리영을 생각할 수 없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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