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시위 진압 경찰의 이유 있는 항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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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 폭도를 두둔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28일 경찰청 내부 게시판에 일선 경찰관들이 올린 글 중 하나다.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 촛불집회 참가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에 대한 불만이다. ‘앞으론 불법 시위자가 물건을 부수건, 청와대 담장을 넘건 경찰은 보고만 있어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의견도 올랐다.

경찰 간부들의 표정에는 자괴감이 역력했다. ‘인권침해 사범으로 낙인 찍힌 것 같은 심정’이라는 것이다. 시위 진압을 담당하는 한 중대장은 “매일 새우잠 자며, 잦은 부상에 시달렸던 전경 대원들을 무슨 낯으로 보냐”고 말했다.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앞장서 불법시위를 조장하는 꼴”이라는 말도 했다.

특히 인권위가 ‘공격 진압’의 예로 든 6월 1일과 29일의 시위에 대해서도 경찰의 의견은 달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들은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1일 새벽에는 2만 명의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었다. 같은 달 29일은 태평로·종로에서 전경 100여 명이 쇠파이프로 무장한 시위대에 포위돼 집단 구타를 당했던 때다. “무턱대고 당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라는 반문이 나왔다.

경찰은 또 “인권위가 시위로 피해를 본 주변 상인, 폭행을 당한 전경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고 지적했다. A4 용지 9장에 걸친 권고안과 설명자료엔 ‘공권력으로 인한 인권침해 감시가 임무인 만큼 (전경 폭행 등은) 조사 대상이 아니다’는 설명 외엔 없었다. 때문에 발표 직후부터 ‘시위대의 폭력은 보지 않고 경찰 진압만 문제 삼았다’(바른사회시민회의)는 비판이 이어졌다. 법무부 관계자도 “인권위의 시각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고 반박했다.

권고안의 현실성도 의문이다. ‘전의경 근무복에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표식·명찰을 부착하라’는 권고안을 내면서도 신상정보가 노출될 경우에 대한 대비책은 없다. “형식 논리에 얽매여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마저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인권위의 기능이냐”는 한 경찰 간부의 말이 설득력을 갖게 한다.

천인성 사건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