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연극 "아름다운 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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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오늘의 한국을 만든 주역들인 50대가 감원과 명예퇴직의 대상에 오르며 위기를 맞고 있다.
『아름다운 거리』(이만희작.강영걸 연출,대학로극장)는 이들을주인공으로 삼아 사회의 뒷전으로 밀려나며 잊혀져가는 50대의 삶을 조명한다.동시에 40~50대까지 관객의 저변확대를 꾀하는작품이다.작품성과 흥행성에서 갖가지 신기록을 남긴 이만희.강영걸 콤비의 네번째 연극이니 기대할 만하다.
『아름다운 거리』는 직업(사업가.은행 고위간부)과 결혼에 실패한 54세 동갑내기 남자들이 함께 사는 일상을 그리고 있다.
고교시절 싸움판에서 만난 안광남(유영환)과 민두상(김주승)은치열한 삶의 전장에서 고지식하고 순박했기에 서로 도우려다 함께추락했지만 서로를 원망하는 일은 없다.
회사택시 운전사,공단이 있는 변두리동네의 사진사라는 고된 일을 하며 어렵게 살지만 진한 우정으로 맺어져 행복해 보인다.
작가는 이들에게 대조적인 외양.성격.인생역정을 설정해 서로 토닥거리게 함으로써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보이게 했다.
오랜 사회생활이 요구하는 직위.체면등의 두꺼운 옷을 벗어버린50대의 인간적인 모습이 보인다.
유영환.김주승이 50대의 연륜과 숨길을 연기하기에는 너무 젊지만 이런 면이 오히려 배역과 잘 어울린다.
안광남과 이혼한 아내 고이랑(성병숙)은 욕심내 재결합하기보다떨어져 살며 서로 지켜보고,때로는 가까이 다가와 격려하거나 몰래 도와주곤 하기에 그들의 사랑이 더욱 애틋해 보인다.
작가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 우정을,조금 먼 곳에 사랑을 두면서 세 사람에게 어울리는 세상으로 「순수의 땅 아프리카」를 전망하기도 했다.
가치판단에서 외형적인 것에 치중하는 세태를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코 패배한 삶이 아닌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욕심스럽게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가져가기보다는 소중한 것일수록 거리를 두고 지켜봐 줄 것,마음만은 가까이에 둘 것을 제안하고 있다.
말의 재치와 장난이 인물들의 내면과 관계성을 드러내며 상징.
의미로 연결되고,아기자기하게 주고 받는 연기와 더불어 진지한 메시지를 웃음뒤에 깔면서 재미와 공감을 잘 끌어냈다.
아쉬움이 있다면 너무 많은 얘기와 휘몰아치는 연기에 관객은 숨쉴 시간,반추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극장에서의 상상과 공연후의 기억이 만나게 하려면 전체적 구성과 공연의 템포를 다시 조절해야 하지 않을까.
(연극평론가.연극원교수)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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